꽃 등불
꽃 등불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2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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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십여 년 전, 경전 공부 중에 지도 법사 스님이 여러 사진을 가져왔다. 방바닥에 16절지 크기의 코팅된 30여 장의 사진을 늘어놓으며 마음에 든 것을 고르라 했다. 고른 다음 자기 느낌을 설명하면 실지 정답과 맞는지 알아차리는 공부였다. 밤에 찍은 연꽃인 줄 알고 합장한 사진을 골랐다. 하지만 생각의 차이였다. 그 사진은 갠지스에 띄워진 꽃 등불이었다. 그때부터 인도에 가면 꼭 꽃 등불을 띄우리라 곱씹었다. 

인도 순례 중이다. 저녁이 되자 바라나시 갠지스 강 순례에 나섰다. 강가까지 비스듬한 거리에는 옷깃을 스칠 정도로 사람이 북적인다. 꽃 파는 어린이 두 명은 경쟁하듯 쫓아온다. 바나나 잎으로 작은 접시 모양을 만들어 꽃과 양초를 놓았다. 열 살도 되지 않은 여자아이는 5달러라고 반복한다. 천천히 걸으면 포위당할 듯하여 빨리 걸었다. 그 아이는 나를 앞서며 길을 막아서기도 하였다. 50루피를 주어도 막무가내이다. 바구니 든 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찍으니 적극적으로 뒤쫓는다. 꽃 접시는 단체에서 샀다는 일행의 말에 사탕 한 줌을 꺼내주어도 막무가내다. 

가트 계단을 지나 일행이 탄 목선에 오르자 여자아이는 옆의 목선으로 뛰어올랐다. 인도말은 알아듣지 못하여 어리둥절했더니 사진 찍은 대가를 요구하는 듯하다. 작은 달러나 루피도 모자라 천 원씩 두 명에게 주었더니 만족하지 못하나 보다. 입이 닷 발은 나왔다.

열대엿 살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는 우리가 탄 목선을 몰았다. 

다비장 가까이에 이르자 꽃 등불을 피웠다. 꽃 접시에 강바람을 등지고 불을 붙였다. 조용히 강물에 내려놓았다. 강 위에 피어난 연꽃으로 보인다. 강 물결이 출렁임에 꽃 등불도 살랑살랑 시소를 타고 있다. 다비장의 영혼도 강물에 흐르며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바란다. 꽃 등불은 한없이 흘러 신에게 가까이 다가설 듯하다. 바나나 잎이 강물을 정화 시켜 주니 골칫거리 꽃 접시도 아니다. 어두워지자 여기저기서 띄우는 꽃 등불로 연꽃이 밤에 피어난 듯하다.

다시 목선을 탔다. 갠지스의 불빛이 광을 내기 시작하니 가트가 더 화려해지고 있다. 안내원은 어두워진 강물의 색깔이 일몰에 따라 붉은색이었다가 푸른색, 하얀색, 노란색을 실감할 것이라 한다. 강물에 노을은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빛처럼 꽃 등불은 흘러갔다. 
경전 공부 중에 찍었던 검정 바탕의 꽃 등불은 찍어내지 못했다. 달빛 아래에서 꽃 등불은 하얀색으로 나타날까. 그렇다면 컴컴한 그믐날 밤에 찍으면 스님의 사진처럼 나타날 수 있으려나. 갠지스 강은 신성한 곳이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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