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커리 밖거리, 후세를 위한 선조들의 삶의 지혜
안커리 밖거리, 후세를 위한 선조들의 삶의 지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1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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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건 시인·문학박사

주택의 구조에도 그 지역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제주도의 경우는 안커리(안채)와 밖거리(바깥채)가 그렇다. 다른 지역의 경우는 본채와 행랑채가 이러한 구조와 비슷하다. 마치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구분되어 있으면서도 마당을 공유하는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제주도의 경우에는 안커리에는 아들 내외가 살고, 밖거리에는 나이든 부모가 살며, 살림살이 또한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다른지방의 본채-행랑채 구조의 삶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예전에 어떤 분이 이러한 제주도 문화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투덜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제주도의 집구조에 따른 삶이 불효를 조장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마치 옛날의 고려장이나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안커리에는 아들네가 살고, 밖거리에는 부모가 사는데, 부모를 더 크고 좋은 집에 모시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부모는 부모끼리 아들네는 아들네끼리 따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세상에 이런 불효가 어디 있느냐는 것 이었다. 한 마디로 부모 공양을 하지 않고 부모 유기를 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 논리가 그럴듯해 보였고, 우리 제주도가 변방에 있어서 부모를 섬기는 유교 문화가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은 것같다는 지적에도 반박을 못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해보니,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단편적인 면모일 뿐이었다. 지역마다 형성된 문화는 그 지역에 정착하고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가 녹아있기 마련이다. 제주도의 문화는 척박한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내륙의 정치·사회·경제적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결과들이 중첩되면서 형성된 것이다. 제주도의 안커리 밖거리 문화는 제주의 선조들이 후세를 배려하고 아끼며, 후세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들이 결혼을 하면 안커리에 살던 부모는 아들 내외에게 안커리를 물려주고, 자신들은 밖거리로 물러난다. 이것은 집안의 살림을 후세에게 물려주고 독립시켜 준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생활을 따로 하면서, 후세의 자립을 도와주고 격려한다. 자신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하나라도 더 물려주고, 부모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축원(祝願)의 결과인 것이다. 그 결과,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삶에 간섭을 최소화하면서도 존중하고 아껴주는 현재의 문화로 발전해오게 된 것이다. 그 마음은 제주도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느네만 잘 살라. 우리걱정은 허지 마라.’는 말에 잘 드러나 있다.

예전의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이 이제는 ‘사람은 제주로 보내고 말은 서울 경마장으로 보내라’는 말로 바뀔 정도로, 제주의 삶과 문화, 그리고 자연을 동경하고 체험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내 주변의 어떤 이는 왜 자신이 제주도에서 태어나지 못 했는지 한스럽다면서, 다음 생에는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싶다고도 한다.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의 우스갯소리지만, 그만큼 제주도 문화의 매력이 적지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것은 그동안 변방으로 내몰렸던 제주 문화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글로벌화되고 있는 한국문화의 개성을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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