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1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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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당신의 눈에 뭐가 보이든 이 술잔에 당신의 모습이 있소. 나는 지금 당신을 보고 있소.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드가 연인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하며 그녀에게 읊조린 대사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이 대사는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뽑은 영화 명대사 중 5위다.
험프리 보가드는 어느 쪽인가 하면 냉정하고 거친 남자의 인상이다. 날카로운 눈매와 턱선, 깡마른 체구. 그래서인지 예를 들어 여자가 “어젯밤엔 어디에 있었죠?” 하고 물으면 
“그렇게 오래된 일은 생각이 나지 않아”라고 냉정한 표정으로 말할 것 같다.
“오늘 밤 만날 수 있어요?” 하고 여자의 자존심을 깎아내며 물으면 그는 다시 “그렇게 앞일을 어떻게 알아” 하고 차갑게 대답할 것 같은 남자다. 그런데 ‘카사블랑카’에서는 달랐다.
1941년 2차 세계대전 중. 북아프리카 프랑스령인 모로코의 항구도시 카사블랑카에는 망명인들과 나치에 반대하는 투사들, 각국 스파이들이 한데 섞여 지낸다. 거기에 이들이 드나드는 술집 ‘아메리카’의 주인 릭이 험프리 보가드이다. 이곳에는 돈이나 영향력 혹은 운이 있는 사람들이 출국비자를 구하기 위해 드나든다. 그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돈이 없고 뒷배가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다려야만 했다, 끝없이.

어느 날 그곳에 릭의 옛 연인 잉그리드 버그만이 남편과 함께 나타난다. 미국으로 도망칠 수 있는 통행증을 구해달라고 매달린다. 아직도 그녀에게 미련이 남아 있었지만 경찰이 그녀의 남편을 집요하게 쫓고 있다는 것을 안 릭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두 사람이 무사히 혼란의 모로코를 빠져나갈 수 있게 돕는다.

미국으로 도망칠 수 있는 통행증을 구할 수 있는 요행을 바라며, 옛 연인을 찾아간 여자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고 위험한 도시에 혼자 남은 남자.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직면한 사랑, 희생,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탐구다. 게다가 ‘카사블랑카’에서 보여 준 험프리 보가드의 캐릭터가 멜로드라마 이상의 차원에 도달한 이유다. 

주제곡 As time goes by(세월이 흐르면)는 여러 번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명곡이다.
대학 시절 ‘카사블랑카’를 보면서 모로코를 동경했다. 언젠가는 가보고 싶고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아직 그 모로코에 가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요즘 들려오는 모로코의 대지진 소식에 가슴이 아프다.

‘카사블랑카’와 함께 내 가슴에 있는 모로코. 빠른 복구를 기도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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