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봉개·구좌 송당·서귀포 효돈 세 곳에 있는 칡오롬
제주 봉개·구좌 송당·서귀포 효돈 세 곳에 있는 칡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1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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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칡오롬

칡은 제주어로 ‘끅’이라도 하는데 50년 전 만 해도 나뭇짐을 묶고, 솔잎을 긁어서 묶는데도 칡(끅)을 사용했으며, 배에서 쓰이던 밧줄을 만들 때도 칡을 꼬아서 사용했었다. 칡은 칡즙을 만들어 마시기도 하지만 말려서 칡차를 만들기도 하고, 술에 담가서 칡술을 만들어 마시기도 하였는데 제주에서는 술병난 사람들이 칡을 고아서 엿을 달여 먹기도 했었다.

제주에서 칡은 어느 곳에도 흔하디흔한 식물이다. 한반도에서는 칡을 빻아서 전분을 만들어 국수나 수제비를 해 먹기도 했다지만 제주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또한 칡잎은 콩잎처럼 먹기도 하고 칡꽃은 튀김을 하여 먹기도 하니 뿌리나 잎이나 꽃이나 버릴 게 없다. 그러나 농장을 일구는 사람, 고사리 꺾는 사람들에게는 씨름하거나 헤쳐나가야 할 귀찮은 존재이다.

제주에는 세 곳의 칡오롬이 있는데 제주시 봉개동 큰칡오롬 466-2번지 336.6m(비고 47m), 족은칡오롬 466-2번지 해발 326.5m(비고 42m), 구좌읍 송당리 칡오롬 산155번지 303m(비고 49m), 서귀포시 상효동 129번지 271m(비고 96m) 세 개의 칡오롬이 있다. 세 오름의 공통점은 칡이 많거나 많았었다는 것이나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제주시~번영로~대천동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비자림로에서 1㎞로 안 되는 사거리 지점 길 왼쪽으로는 거슨세미오롬이 있고 길 오른쪽으로는 송당목장~이승만별장~민오롬으로 가기 전에 칡오롬이 있는데 칡오롬은 민오롬 자락과 바로 접해 있으며 칡넝쿨이 엉켜진 고사리밭이다. 칡오롬 동북쪽의 열린 굼부리는 송당목장에 속해 있는 목초지로 개발되었다.

고려조에 몽골은 제주도에 말을 가져오면서 제주도를 열 개 마장으로 나누어 말을 방목했었다. 그때 구좌읍 지경은 제1 목마장이었는데 송당리의 칡오롬이 있던 칡오롬 주위의 장기동 벌판은 해방 이후 정부에 수용당하여 한국제1 국립목장이 되었던 곳이다.

19세기 중반, 제주목사(1841~1843) 이원조가 쓴 ‘탐라지초본’ 중 82개 오롬은 제주목 43개, 정의군 24개, 대정현 15개가 있는데 이중 칡오롬은 갈악(葛岳)이란 이름으로 등재되었다. 정의현 상효동 칡오롬은 등재되지 않았고 제주목 갈악만, 등재되었는데, 30/체오롬(箕岳), 31/거슨세미(三美岳), 32/검은오롬(黑岳), 33/갈악(葛岳), 34/족은민오롬(小禿岳) 35/돗오롬, 36/랑쉬오롬大郞秀岳 등, 구좌면 오롬들이 연이어 등재된 걸 보면 ‘송당칡오롬’인 듯하다.

송당 칡오롬 동쪽으로는 개여기(백약이)오롬, 동북쪽은 아부오롬, 북쪽은 거슨세미·안돌·밧돌오롬, 남쪽은 민오롬·돌리미·비치미, 서쪽은 윗선족이오롬 등의 오롬들로 둘러싸여서 칡오롬은 모두 가로막혀 있으니 전망이 전혀 없는 낮고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오롬이다.

칡오롬 등성이에서 동북쪽으로 나오면 삼나무 숲 사이에 잔디와 긴 황새 풀들과 칡넝쿨이 어우러져 갈 바를 알 수 없다. 오롬은 퀴카시(구지뽕)과 찔레와 청미래 등이 엉켜 있어서 가시덤불 속에서 길을 만들며 오롬을 탈출한다고 애를 먹었다. 그래서 애초에 산행을 시작하는 동남쪽 편으로 다시 나오지 않으면 가시덤불에서 사로잡히어 고생하게 되니 추천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서귀포 효돈의 칡오롬은 완전 정반대의 경우이다. 1960년대, 서귀포 효돈의 경우에는 칡오롬 일대가 전부 밀감밭으로 개발되어서 오롬의 높이가 낮지 않은 곳이나 효돈리 칡오롬 일대는 높은 곳까지 밀감밭으로 개발되었다. 밖에서 보기에는 오롬이 확실하지만, 밀감밭으로 꽉 차 있으니 “여기도 칡오롬인가?” 물을 것이다.

송당칡오롬이 송당목장에 속한 개인 오롬인 것처럼 상효동의 칡오롬도 모두 사유지들이다. 상효동 칡오롬의 경우에는 산업적으로 잘 개발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송당 칡오롬처럼 불모지로 버려두는 것보다는 차라리 과수원으로 개발되는 것이 훨씬 좋아 보인다.

정의현의 남원·서귀포 지형은 비탈진 곳이 많은 다우지역이다. 또한, 지질은 돌이 많고 흙은 화산토이다. 1960년대 초반까지도 제주도의 식량 농업은 조·보리였는데 이곳 땅들은 조·보리 같은 식량 농업에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농사철이면 동촌까지 와서 일을 해주고 쌀을 구해 갔었다. 그렇지만 지금 정의 땅이 과수 농사를 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라서 오름 높은 데까지 과수를 심다 보니 이제는 효돈 칡오롬은 양지로 변했다. 그러나 송당칡오롬은 오늘도 칡넝쿨이 우거진 고사리밭이고 보면 음지와 양지가 바뀐 셈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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