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마지막 삶
평온한 마지막 삶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1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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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 수필가

아흔여덟 살 최고령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에서 받아왔던 입원 진료를 멈추고 연명 치료 대신 통증 완화와 정서적 보살핌을 받으며, 남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란다. 그는, 피부암을 앓고 있다가 간과 뇌까지 전이됐다.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한다는 의미에서 그의 귀가가 새삼 빛나 보인다. 

그의 집은 땅콩 농부였던 1960년 손수 지어 평생을 살아온 침실 두 칸짜리 검박한 시골집이다.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혀 연임 도전에서 참패하고 귀향했을 땐 가뭄으로 땅콩 농장마저 파산했다. 집만이 유일한 재산으로 남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느 퇴임 대통령처럼 회고록 출간, 고액 강연으로 억만장자가 되는 길을 마다하며 집 짓기 봉사와 평화 활동으로 가장 위대한 퇴임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쇠잔해가는 삶의 끝자락에서까지 자기에게 가장 맞는 방식으로 인간 존엄의 고귀함을 시현(示現)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가장 어려운 기술은 살아가는 기술이다”라고 미국의 유명한 교육자 ‘메이시’가 남긴 말이 생각난다. 카터의 삶이 그런 것 같다.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안고 태어난다.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삶을 낭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요즘 사전연명의료 포기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어느 앵커의 시선에서 아흔이 된 어느 할머니의 삶을 소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남편을 여읜 뒤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할머니는 수술을 포기하고 난생처음 아들 부부와 반려견과 함께 1년 하고도 1달 동안 여행하다 숨을 거뒀다고 했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정신의학자 앨런 프랜시스는 “병원에서 죽는 것보다 나쁜 죽음은 없다”라고 했다. 산다는 것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일이다. 알차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제공하는 것처럼 알찬 생애가 평온한 죽음을 가져다준다는 얘기를 되새겨 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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