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한 두 남자의 발걸음 - 마임극 ‘동행(同行)’
꿈을 향한 두 남자의 발걸음 - 마임극 ‘동행(同行)’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1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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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섭 문화예술연구소 함덕32 대표

관객이 공연장 문을 들어서자 역무원으로 분(粉)한 스탭이 매표소에서 열차티켓 모양의 입장권을 나눠준다. 무대는 벤치 하나만이 놓여있는 가상의 기차역이다. 잠시 후 객석등이 꺼지고 무대조명이 켜지면서 두 사내가 차례로 등장하며 다급하게 기차 시간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초조한 듯 시계를 들여다본다. 하지만 기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 한 두 사내는 이내 서로를 탐색하며 무언의 극을 시작한다. 마임극 ‘동행’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마임극 ‘동행’은 올해 제주문화예술재단이 공모한 도내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9월 22일부터 3일 간 공연되었다.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울 출신 마임니스트 강정균과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주 출신 배우 현대철이 호흡을 맞춘 공동창작작품이다.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학로에서 연극으로 연을 맺어온 사이라 어쩌면 이번 작품 ‘동행’은 그들의 과거와 미래의 꿈을 반영하는 듯했다. 

그리스어 ‘흉내 내다’라는 뜻의 ‘미모스(mimos)’에서 유래된 마임(Mime)은 언어를 쓰지 않고 몸짓과 표정으로만 연기하는 극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대사가 없고 오로지 몸과 오브제만으로 극을 진행하기 때문에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극대화하기 위한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한다. 또 단순한 볼거리나 이벤트 형식의 마술, 저글링(juggling, 재주·기예)과 달리 현대 마임극의 경우 스토리의 주제나 철학이 강조되며 마임니스트는 예술적으로 이를 표현한다.

대표적인 마임니스트로 장 루이스 바로, 마르셀 마르소 등이 있다. 특히 마르셀 마르소는 삐에로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작품 ‘Bip’를 통해 마임극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마임 1세대라 할 수 있는 유진규의 뒤를 이어 유홍영, 임도완, 최규호, 심철종 등이 1980~90년대 한국 마임극을 주도해 나갔다. 그러나 이후 한국 현대 마임은 발전적으로 이어지지 못 하고 한동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 했다. 

이번의 오이예술극장에서 공연된 ‘동행’에서 두 배우는 극 중 상황극을 통해 자신들의 과거를 오로지 마임으로 연기했다. 강정균은 곰돌이 인형을 자신으로 설정하고 자신은 엄마의 역할을 연기했다. 현대철은 권위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찌든 자신의 삶을 표현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 두 배우는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장면과 자기의 내장을 꺼내 먹는 좀비 놀이를 마임으로 보여주었다. 이윽고 저 멀리 기적 소리가 가까워지며 둘은 기차를 타기 위해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순간 무대조명이 어두워지면서 극은 마치게 된다. 

오랫동안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호흡을 맞춰온 배우들인지라 필자 또한 기대를 가지고 공연을 보았다. 하지만 작품 구성과 연출에 미흡함이 드러난 것 같아 아쉬웠다. 장면 전환이나 이야기 전개 과정에 있어서의 연속성, 그리고 표현의 당위성과 참신함이 부족하여 몰입과 집중이 생명인 마임극의 재미가 반감되고 말았다. 향후 좀 더 치열한 작업 과정을 통해 마임극 ‘동행’의 진수를 다시 한 번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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