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귀가 되자
당나귀 귀가 되자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0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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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제주도 자치행정과

신라 시대 경문왕은 임금 자리에 오른 뒤에 갑자기 귀가 길어져서 당나귀의 귀처럼 되었다고 하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으나 오직 왕의 복두장이(왕이나 벼슬아치 머리에 쓰던 복두를 만들거나 고치는 사람)만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 그 사실을 감히 발설하지 못 하다가 죽을 때에 이르러 도림사(道林寺)라는 절의 대나무밭 속으로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라고 소리쳤는데 그 뒤부터 바람이 불면 대나무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왕 미다스는 태양신 아폴로와 판 사이의 음악 경연을 참관했는데 아폴로의 패배를 선언한 미다스는 아폴로의 노여움으로 귀가 당나귀 귀처럼 변하게 되었다. 미다스는 자신의 귀를 모자로 가렸으나 이발사에게만은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비밀을 지키라고 명령받은 이발사는 참을 수 없어서 땅에 구멍을 파서 ‘미다스 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고 구멍을 다시 덮었다. 그 뒤 그 자리에 생긴 갈대밭에서 ‘미다스 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한편 어떤 물체에서 나온 소리는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데 그 소리의 세기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 줄어든다고 한다. 귓바퀴는 소리를 모으는 역할을 하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면 손바닥을 오므려 귀에 대고 잘 들으려고 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귀가 크다는 것은 작은 소리도 잘 들으라는 뜻이고 귀가 크기 때문에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소통 수단은 SNS이다. 디지털 시대에 글로 적어 의견을 전달하는 것에 대한 기대치가 사실상 높지는 않다. 물론 직접 만나거나 지면을 통해서 주민 의견을 듣는 방법이 성가시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에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책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통로 중의 하나로 중요하게 기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교적 많은 주민이 찾는 읍면동의 민원실은 지역주민들과 행정기관이 소통하는 창구라 할 수 있겠다. 당나귀의 귀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겠다. 주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이 임금님의 당나귀 귀 이야기에 담겨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아울러 아무리 작은 주민의 소리라 하더라도 소중하게 새겨듣고 더욱 소통하면서 청렴해지고자 하는 마음가짐도 가져야 할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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