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노인성을 바라보는 삼매봉은 남당머리오롬이다
남극의 노인성을 바라보는 삼매봉은 남당머리오롬이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10.0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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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남당머리오롬

서귀포시 서홍동 809-1번지의 삼매봉은 서귀포시 시민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삼매봉’으로 검색하면 ‘삼매봉공원’ 주차장으로 안내해 준다. 이곳은 ‘올레 7코스’의 출발점으로 제주뿐 아니라 세계 제1의 경관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또한 제주 올레코스 중에서 제일 높은 지점으로 전설과 역사와 경관이 어우러진 곳이나 외관은 그저 그렇다.

그 아래는 서귀포 항구가 있는데 앞쪽(南)에는 새섬이 있고 동쪽으로는 제지기오롬·섭섬, 서쪽으로는 범섬이 보인다. 필자가 청년 시절이던 1970년대 초, 서귀포~부산 간 여객선에서 실습기관사 승선하던 때이다. 서귀포 항구로 입·출항하면서 제일 처음으로 보이는 곳이 삼매봉오롬이다. 그러나 바다에서 보는 이 오롬은 서귀포 항구를 품고 있는 듯 포근하다.

1970년대만 해도 먹고 어려운 시절이어서 이 오롬의 의미도 별 게 아니었다. 단지 서귀포 항구를 오가는 어선들은 이 오롬이 눈으로 보는 항구의 표지일 뿐이었다. 1960년대 이후 서귀포 일대의 밀감나무는 아들을 대학교 보내는 대학나무가 되던 시절, 필자는 대학교에 진학할 수 없어 서귀포 항구를 가로질러 새섬까지 수영해 가며 울음을 씻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이 오롬은 깔끔하게 단장된 시민공원이 됐다. 세계인의 관광지가 된 서귀포 70리의 그 유명한 외돌개는 전설을 품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멀지 않은 곳에 범섬이 눈앞이다. 고려 말기 100여 년, 몽골인들의 ‘목호의 난’을 수습하기 위해 1374년 고려의 최영 장군은 이들을 뒤쫓아서 결국 몽골군들이 범섬에서 최후를 마치게 되었던 곳이다.

오롬 길은 모두 계단인데 좌우로는 삼나무·후박나무·참식나무 등이 많다. 팔손이가 보여 가까이 가보니 ‘동탈목’이다. 아마도 주위의 귤나무 과수원에 심었는데 삐져나와서 자란 것 같다. 춘란을 닮아 파랗게 보여 가까이 가보니 란(蘭)이 아니고 맥문동도 아닌 ‘맥문아제비’였다. 타이완에서 흔히 보았는데 제주에서는 새섬·천지연의 서귀포 등지에서만 자생한다. 겨울이 되어 보랏빛 예쁜 방울(열매)이 보고 싶으나 이제 꽃을 피니 겨울이 되어서야 보일 것이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는 등성이를 이루는데 등성이 좌우에는 천선과나무 도열하였고, 이제 노란 꽃을 피울 시기의 털머위는 새봄처럼 솟아오르는 게 신기하다. 정상 등성이에는 100년을 넘겼을 법한 늙은 곰솔이 듬성듬성하다. 정자가 보이고 주위에는 배롱나무꽃 몇 그루와 붉은 칸나 꽃이 무리 지어 한창이다. 오롬 위의 모습이 동남아의 어떤 곳인 듯 낯설어 보인다.

정상 153.6(비고 104)m, 정자에 오르니 가렸던 북쪽 한라산 봉우리가 환하다. 뒤돌아보면 남쪽 바다의 외돌개는 잘 보이지 않고 범섬은 바로 눈앞이다. ‘남성대’라는 비석이 보여서 비문을 보니 ‘현화진의 시비’인데 국선서예작가인 현중화 선생이 글을 썼다고 적혀 있다. 정자에 위의 처망에도 이름만 들면 알만한 조선 시대 유명한 시인들의 작품이 남아 있다.

작품들은 ‘5언 또는 7언 율시(절구)’로 되어 있다. 정온(桐溪 제주유배 10년, 오현단 5인, 귤림서원 배향 3인 중 1인), 김윤식(시인, 제주유배 11년)·이원조(헌종 5년 제주목사, 우도·가파도 개발)·김정희(추사체 창시)·김상현(청음, 제주도 안무어사로 1601년 8월 입도, 제주 견문을 바탕으로 作詩)과 고응삼 선생(세화 출신)의 ‘남성정’이란 시도 있다.

이 오롬은 한국 유일의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별을 관찰할 수 있다. 이곳을 ‘남성대’라 한 것도 남극노인성을 관찰할 수 있는 대臺(물건을 얹는 대, 높고 평평한 곳)라는 말일 것이다. 이곳에는 남극노인성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을 시간별로 적어놓은 입 간판도 세워져 있다.

이 오롬은 이제껏 삼매봉(3개의 매화꽃 봉우리 같다)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이는 조선시대에 봉화를 올리던 데서 불려 지며 고착된 명칭이다. 그러나 삼매봉 어디에도 이런 안내판은 없다. 아마도 정자가 세워진 곳이 봉화대의 자리였을 것으로 보인다. 동홍리·서홍리는 고려 때 ‘홍로(烘爐)현’이라 불렸으나 ‘홍로’의 뜻을 모르고 있으나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어 보인다.

홍(烘) 자는 ‘불쬘 홍·횃불 홍’으로 ‘횃불·횃불을 켜다·불을 쬐다·그을리다’라는 뜻이다. 어쩌면 고려 때도 이 오롬은 봉화대 역할을 했을 수 있다. 현재 서홍2동은 ‘남당머리’라 불리다가 ‘남성리’라 불렸는데 이는 남극성이 대기층의 푸른 빛을 흡수하여 붉은빛으로 보이는데 ‘홍로’라는 뜻으로 보인다. 또한, 이 오롬은 ‘남당머리’라고 불린 것으로 보면 ‘남당(머리)오롬’으로 보인다. 이는 정의현 고성의 머릿오롬(首山), 영모르오롬(영주산)이라 부른 것과 다르지 않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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