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자형 천혜의 항만…깨끗하고 아름다운 바다 위 정원박물관
U자형 천혜의 항만…깨끗하고 아름다운 바다 위 정원박물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2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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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高·梁·夫씨가 최초로 입도한 섬 손죽도(巽竹島) - 4
손죽도는 섬모양이 삼각형이나 거대한 U자형의 천혜의 항구를 가졌다.
손죽도는 섬모양이 삼각형이나 거대한 U자형의 천혜의 항구를 가졌다.

# 남도의 중요 어업전진기지였던 섬

손죽도는 해방 전후까지 안강망 어선으로 유명했던 남도의 중요한 어업전진기지였다. 오랜 세월 풍요로운 섬이 된 것은 섬 주변 환경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손죽도 근해에는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할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잡혀 환경의 축복을 많이 받은 섬이라 했다. 일본의 선진 어업과 동력선이 등장하면서 손죽도에는 중선배인 안강망이 시작됐고, 가난했던 1950~60년대에도 손죽도는 보릿고개가 없었다고 한다. 먼바다와 육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손죽도, U자형으로 된 천혜의 항만으로 배를 정박할 수 있는 넓은 장소가 마련된 것도 한 이유이기도 하다.

옛날부터 손죽도 사람들은 배를 타고 서해의 위도와 연평도까지 다니며 뱃길을 열었고, 또 오징어철이면 울릉도 어장까지 진출해 오징어를 잡았다. 풍선을 타고 먼바다를 다니면서 어장 개척만이 살 길이었던 시절, 여느 섬이 그러하듯 손죽도에도 슬픈 이야기들이 많다. 1950년대부터 크고 작은 해난사고로 어선이 침몰하며 많은 섬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슬프게도 제사가 같은 날이 일 년에 네 번이 있다고 한다. - 한국의 섬 이재언

이 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깃대봉(242m)으로 섬 중앙에 있고 인구는 155명에 84세대가 선착장을 중심으로 완경사지에 집중해 살고 있다. 섬에는 작은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지어 고구마, 마늘, 감자, 보리 등을 수확한다. 마을 안길을 돌아보기 위해 어스름한 새벽길을 나섰다. 안선창 위쪽 중천샘길로 조금 올라가자 아주 돌담길이다. 오래된 담쟁이와 이끼가 덮여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랜 세월 섬사람들의 바람막이가 됐을 것 같다. 서서히 밝아오면서 마을 안길은 삶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높고 낮게 쌓아 올린 돌담 위에 호박 줄기가 뻗어있고 호박꽃이 예쁘게 피었다. 호박꽃을 보니 문득 어릴 때 여름 방학이면 호박꽃 속에 호박벌을 잡아넣어 흔들면 윙윙거리는 소리를 귀에 대고 신나게 웃었던 생각이 떠오른다.

바다 위 정원박물관 사업으로 주민들이 꾸미고 있는 특색있는 정원.
바다 위 정원박물관 사업으로 주민들이 꾸미고 있는 특색있는 정원.

# 주민들 직접 정원 가꿔 ‘바다 위 정원박물관’ 조성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주민이 “이 새벽에 뭔 일이요”, “마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돌담길이 너무 아름답네요”, “예. 이 길은 손죽도에서 아름다운 길이라 합디다. 어디서 왔소”, “예 제주도에서 왔습니다” “워메 멀리서 왔소. 천천히 돌아보시오” 골목을 걷기 시작할 때부터 내 뒤를 졸졸 따라오던 강아지가 이젠 옆에붙어 다닌다. 사진을 찍을 때도 옆에 앉아있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자 신나게 달린다. 따라갔더니 문틈으로 쑥 들어간다. 자기 집인 모양이다. 이곳까지 안내한 강아지와 헤어지고 조금 큰 길로 나오자 큰 우물이 마을 중심지에 있다. 우물에 뚜껑을 덮은 것을 보면 아직도 사용하는 우물인 듯 하다.

손죽도는 섬 가꾸기 사업으로 ‘바다 위 정원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80여 가구가 정원 가꾸기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쉬기 좋은 섬, 제일 예쁜 섬 만들어보자는 주민들의 바람이 담겨진 일이다. 각 가정마다 특색있는 정원을 만들고 있는데 한 집에는 나무에 ‘오! 자네왔는가’란 글이 붙어있다. 큰 골목으로 들어서니 이대원 장군 사당이다. 사당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사당을 보호하고 있다. 마을 안에는 세 그루 노거수가 있어 이 마을이 오랜 풍상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섬에 제주 고양부 씨가 이 처음 살았다는 고부양터에 갔지만 풀만 가득 할 뿐 아무 흔적도 없다. 위에 있는 손죽초등학교도 2022년에 폐교돼 운동장에는 풀만 무성하다. 거문초등학교 손죽분교는 개교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다. 이 학교를 세울 때 손죽도 전 주민이 바다와 산에서 돌을 등짐으로 지고 와 지었는데 일반적인 콘크리트방식이 아닌 돌을 잘라 이어 붙여 만든 학교다. 외벽은 화강석을 직사각형으로 잘라 세우고 중앙부를 돌출시켜 정면성을 강조했고, 중앙기둥은 원통형 대리석으로 세워 고전적인 멋을 살렸다. 이 가치를 인정받아 1952년 전남 교육문화유산 제7호로 지정됐다. 교문 한쪽에 개교 백 주년 기념탑이 쓸쓸히 서 있다. 손죽도는 환경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섬이다. 그래서 ‘바다 위 정원박물관‘이라 부르고 있는 모양이다.

섬에서 만난 사람 / 박추자 할머니

손죽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제주 고씨, 양씨, 부씨가 최초란 기록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볼 생각이었다.

배에서 내려 민박집에 갔을 때 첫 입도자 이야기를 꺼내자 “저기가 고부량터”라고 가르켜준 박추자 할머니(78)를 만났다.

손죽도에서 19대를 살았다는 박 할머니는 “옛날 할아버지가 학교 아래 고부량터는 제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요. 저가 어렸을 때는 손죽도에 제주도 해녀들이 많았는디, 지금은 그 사람들이 제주에 갔는지 어떤지 모르고, 몇 년 전까지도 살았다는데 현재는 없을 거요”

● 초등학교 동창과 결혼하셨다고 하시던데=젊었을 때 섬을 떠나고 싶은 적이 있었지. 그때 동창인 남편을 만나 살면서 운명인가 했어. 1남 2녀를 키우며 살다 보니 이젠 손죽도를 떠나선 못살 것 같아.

● 지금은 아드님에 함께 살고 계신가요=좋은 직장 다니는 아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섬에 들어와 나를 돕고 있지. 한참 자기일 할 나이에 나 때문에 섬에 들어와 미안하고. 특히 며느리한테 더 미안해

● 제주도에 가 보셨나요=두 번 갔지. 참 아름답더군. 우리 손죽도는 작지만 아름다워, 역사가 있고, 똑똑한 사람도 많아요 봄에 손죽도 화전놀이가 유명하니 그때 꼭 놀러 오라며 자리를 뜬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마을 안에 있는 400년 된 보호수.
마을 안에 있는 400년 된 보호수.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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