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벨別+한자道, 벳(벼화禾)+뒤(북北)=벳뒤오롬
제주어 벨別+한자道, 벳(벼화禾)+뒤(북北)=벳뒤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2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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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벨도오롬

제주시 화북동 4472번지에 있는 벨도오롬(별도봉(別刀烽))은 제주시 사라봉(紗羅烽) 공원이 조성되면서 함께 개발됐다. 먼바다에서 사라오롬과 벨도오롬을 바라보면 두 오롬은 마치 쌍둥이 오롬처럼 보인다. 화북동 서쪽 끝인 곤을동으로 가는 바닷길에서 바라보아도 두 오롬은 자락이 마주 닫는(겹치는) 정도가 아니라 두 개의 봉우리를 가진 하나의 오롬같아 보인다.

벨도(별도·別刀/화북·禾北)오롬은 제주시 화북동 4472번지에 소재하고 있는데 그 높이는 해발 136m, 순수한 산의 높이를 말하는 비고는 101m이니 해발 35m 위에 솟은 해안 오롬임을 알 수 있다. 비고로 볼 때 사라봉의 비고는 98m이니 벨도봉은 사라봉보다 3m가 더 높은 편이나 도토리 키 재기다. 또한, 면적으로도 사라봉은 233.471㎡, 별도봉은 242.535㎡로 비슷한데 두 오롬은 자락까지 맞대고 있으니 마치 쌍둥이 오롬처럼 보인다.

벨도(베리)오롬의 탐방은 화북-옛 곤을동 마을이 있는 오현중·고등학교 후문에서 사라봉(서쪽)을 향하여 갈 수 있으나 제주 시내 사람들은 사라봉공원이 있는 사라봉동길 74번 길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사라봉/별도봉-모충사 삼거리(평생학습관<우당도서관<국립제주박물관<일주동로)에서 사라봉>오현중·고등학교 후문(동쪽)을 향해 탐방하는 게 용이하다.

역사적으로 벨도오롬 인근에는 1세기를 전후하여 곽지리식 토기와 고내리식 토기가 발견된 그것을 보면 이 마을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17~20세기까지만 하여도 ‘벳뒷개을’이라 불려졌다. 조선시대 ‘신동국여지승람’에는 ‘벨도내’, ‘벨도악’이라 불리다가 ‘탐라지’에서는 비로소 ‘화북(禾北)’이라고 쓰이며 ‘화북오롬’으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벳뒤’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벳은 벼(화禾/곡식)로, 뒤는 북(北)으로 보았다. 옛날에는 앞을 남(南), 뒤를 북(北), 오른쪽은 동(東), 왼쪽은 서(西)로 보았다. 그래서 한자로 표기할 때, 벳은 벼화(禾)자, 뒤는 북(北)으로 보아서 ‘화북(禾北)’이라는 한자어를 불리게 됐다. 그리고 중산간 마을이던 현재의 화북2동은 ‘거로’라는 다른 마을이다.

1703년 ‘탐라순력도’에서도 화북동은 ‘벨돗개, 벨도을, 벨도포’ 등으로 쓰였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조선시대의 제주 목사 이원조가 쓴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 산천(山川)조에서는 82개의 오롬이 등재되었는데 벨도오롬은 화북악(禾北岳)으로 표기된 것을 보면 ‘화북(禾北)’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시대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벨도봉은 사라봉 봉대에서 받은 정보를 수근연대(修近煙臺)와 교신하던 별도봉 연대가 있었다. 별도연대는 직군(직무일꾼) 12명이 근무하던 작지 않은 연대다. 벨도(별도)포는 제주시 산지포구와 붙어 있다. 조선 시대 때는 육지에서 목사가 제주도 올 때는 조천포구로 들어왔으며 화북포구는 제주 9개 진 중에 해군들이 주둔하던 화북진이 있던 곳이다.

사라봉오롬 동쪽 끝자락 큰나무 아래는 음용수대와 화장실이 설치됐다. 거기서 바로 좌측으로 나가는 아랫길이 벨도오롬으로 나가는 길(좌쪽)이다. 그 갈림길에는 돌담으로 된 관람석이 있는데 여기가 유네스코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칠머리 당굿’이 열리는 곳이다. 그리고 사라봉 기슭에는 칠 머리 굿 전승관도 따로 가지고 있어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올레 18코스와 겹치는 이 길은 제주항을 바라보며 걷노라면 비탈은 점차 깊어 지고 이윽고 그 유명한 별도봉 절벽을 지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길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들은 옛이야기는 ‘배 타고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서 애기를 업고 기다리던 부인은 그 자리에서 돌이 되었다’는 전설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말이나 연인을 잃은 여인들이 이곳에서 종종 자살했다고 해서 ‘자살바위’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절벽은 제주어로 ‘벨’이고 언덕길(道) 끝에는 ‘애기업개돌’이 있다. 지난겨울 붉은 동백이 필 무렵 눈 내린 벨도오롬(別刀烽)을 지나노라니 남군을 기다리다 죽었다는 여인의 안타까운 전설이 생각나 눈물겨웠다. 그 겨울 동백은 진지 오래고 지금은 푸른 동백 열매들이 둥실둥실하다. 칡넝쿨 엉켜진 곳을 지나면 곰솔과 상록수 우거진 동백나무 푸른 숲길을 지난다.

벨도오롬의 겨울은 동백, 봄의 벚꽃은 가장 아름답다. 가을로 가는 무더위 때도 그늘이 좋은 오름 들녘 사잇길에는 꽃댕강나무(라벨리아)가 향기롭다. 백일홍 붉은 꽃이 낭군을 기다리다 애기업고 죽어간 슬픈 사연처럼, 베롱나무 꽃 피는 가을날도 벨도오롬은 눈물겹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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