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동아시아 조류학 연구 내용 담은 학술지
1920년대 동아시아 조류학 연구 내용 담은 학술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2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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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조학휘보 창간호(1927)
동아조학휘보(東亞鳥學彙報) 창간호 표지.
동아조학휘보(東亞鳥學彙報) 창간호 표지.

우리 속담에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이란 말이 있다. 가뜩이나 크고 걸음이 느린 소가 앞으로도 아니고 뒤로 걷다가 쥐를 잡다니 작지만 잽싸기로 명성이 자자한 쥐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확률이 낮은 경우를 빗대서 하는 말이리라. 가능성이 희박할 뿐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 살다보면 뜻하지 않았던 큰 기쁨이 우리 곁에 슬며시 다가오기도 한다.

예전에 언급했던 바와 같이 잡지 가운데서도 창간호를 수집하는 벽(癖)이 있는 나로서는 ‘어쩌다 만난 창간호’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기에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가격이 너무 과하지만 않으면 일단 챙기고 본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이번엔 쥐가 아니라 새를 잡았다. 어떤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마주친 창간호 한 권을 간만에 덤으로 매입했는데 받고 보니 그리 두껍지도 않은 얄팍한 학술지에 뜻하지 않은 귀한 자료가 숨어있었다. 그야말로 횡재(?)를 했다. 오늘은 그 책을 소개해 보련다.

바로 1927년에 나온 ‘동아조학휘보(東亞鳥學彙報)’ 창간호다. 글자 그대로 동아시아의 조류학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모미야마 도쿠타로(籾山德太郞 1895~1962)가 전쟁 전에 무역으로 재산을 모은 후 독학으로 조류(鳥類)에 대해 연구하면서 자신의 성을 따서 만든 연구소에서 발간한 학술지의 첫 권이다. 

그가 각지의 새를 수집해서 당시 박제사로 유명했던 나카소네 산시로(中曾根三四郞)에게 의뢰해서 표본을 만들거나 다른 이들의 새 컬렉션을 인수해 정리하고 분류해서 그 성과를 담아 출판했던 이 책이 주목되는 건 바로 맨 끝에 영문으로 작성된 ‘제주도산조류채집품목록(濟州島産鳥類採集品目錄)’이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쇠검은머리쑥새 머리 부분 도록.
쇠검은머리쑥새 머리 부분 도록.

이 글에 수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1926년 4월 제주도로 세 번째 채집 여행을 갔던 다카하시의 컬렉션과 1926년 11월부터 1927년 4월까지 시게타가 만든 컬렉션, 1927년 2월부터 4월 사이에 시다와 미야지가 만든 컬렉션 등을 먼저 소개하고 이 세 컬렉션은 모두 자신이 인수했다고 밝히고 제주도에서 발견된 여섯 종의 새로운 아종에 대한 설명도 첨부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일본에서 두 번째 가는 조류 컬렉션이었던 그의 표본들은 후에 일본 야생조류 전문기관인 야마시나(山階)조류연구소에 기증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연구소의 표본 D/B (https://decochan.net)를 검색해 보면 소장 표본 7만7400여 점 가운데 1만4600여 점이 모미야마의 컬렉션이다. 그 중 2148 점이 제주도 새의 표본(부분 박제 표본 여섯 점 포함)으로 모두 1923년 9월부터 1931년 4월까지 채집해서 만든 학술연구용 간이박제(簡易剝製)들이다. 그 중에는 다카하시 등이 이왕에 수집했던 표본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기에 그의 제주도 조류에 대한 연구의 기초는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리도 소중한 제주도 조류 관련 자료가 잘 보존돼 있는 이 연구소가 도쿄대공습 때 소이탄(燒夷彈)을 10발이나 맞고도 이중으로 된 천장 덕분에 화재를 면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알만한 분들은 다들 알고 계시는 내용을 가지고 혼자서 이리 수선을 피우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기도 하다. 혹여 다들 아시는 내용이면 저의 과문(寡聞)함을 탓하시고 한 번만 용서해 주시길 바란다.

동아조학휘보 창간호 ‘제주도산조류채집품목록(濟州島産鳥類採集品目錄)’ 부분.
동아조학휘보 창간호 ‘제주도산조류채집품목록(濟州島産鳥類採集品目錄)’ 부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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