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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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1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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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매듭은 넓은 의미로 말하면 실, 끈 등을 풀어지지 않게 묶는 것이다. 전통매듭은 좁은 의미로 실용적이거나 장식적인 끈목을 다양하게 엮고 묶어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여러 가닥의 실을 합해서 세 가닥 이상의 끈을 짜는 것을 ‘끈목’이라고 한다. 끈목은 명주실이나 무명실을 꼬아서 만든다. 전통매듭은 여러 단계를 거치고 수작업을 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매듭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매듭장’이라고 하는데, 매듭장이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서예나 미술에서 초대작가가 되려면 전시회와 입상점수가 필요하듯이 전통매듭을 이수했다 하더라도 전시회를 열어야 하는 등 일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교선배님의 딸(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이수자)이 첫 전통매듭전시회를 고향 제주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회장을 찾았다. 끈목을 엮는 ‘다회틀’을 전시하여 실제 매듭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여러 갈래의 실이 실패에 매달려 있다가 순서대로 돌려면 끈이 꼬아지는 것이다. 가닥의 수에 따라 4수, 8수, 16수, 24수 등으로 엮이며 굵기도 달라진다. 

전시된 작품들은 노리개와 소지품을 담는 주머니 등이 많았다. 주재료는 명주실, 은사, 금사, 면사 등이며 옥이나 비취, 가죽도 있었다. 귀주머니, 어깨 주머니, 돌 띠, 필낭, 담배쌈지, 은장도, 삼봉술 노리개 등을 보면서 비슷한 것 같으나 쓰인 재료, 술의 색깔이나 굵기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호패 주머니도 있었다. 조선 시대에 매듭 용품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노리개는 지위에 따라 장신구와 술의 갯 수가 달랐다는 것도 설명을 듣고 알았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와의 추억을 매듭으로 엮어 놓은 작품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였다. 할머니께서 조각 상보를 만들어 주셨는데, 너무 아까워서 사용은 안 하고 부적처럼 간직하고 있다가 상보의 네 귀퉁이에 고운 매듭을 달아 할머니의 사랑을 추억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투병 중 여행에서 사다 준 펜던트를 다시 매듭으로 연결하여 목걸이로 전시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길,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매듭으로 켜켜히 담고 있었다.

전시회의 주인공은 인사말에서 무형문화재 매듭 전수생이 된 것은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덕분이라고 하였다.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인연이 그의 삶을 이끌어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것도 잘 엮인 매듭이 아닐 수 없다. 

만나고 헤어짐, 가족을 이루는 일, 직업을 가지는 일, 꿈을 실현하며 한평생 사는 일들이 모두 매듭과 같다. 매듭을 엮을 때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용납되지 않는다. 실을 염색하는 일, 합사하고 끈목을 만들어 매듭을 엮는 과정마다 온 정성을 다한다. 전시된 작품 하나가 혼을 담은 작품이다. 인생도 그렇게 매듭을 엮듯 정성을 다하면 각각의 멋진 자기만의 인생 매듭이 엮어질 것이다. 어쩌다 꼬여버린 매듭은 풀어서 다시 엮어야 하거나 잘라내야 한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엉킨 매듭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가 있다. 이 기도문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독일 유학 중에 지은 것이다. 성모님께서 엉킨 실타래를 푸시는 모습의 그림을 보고 기도문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에게도 한순간 엉켜버린 매듭이 있다. 아무리 풀어보려 애써도 잘 풀리지 않아 속만 태우고 있다. 그럴 때마다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엉킨 매듭을 풀어달라고 기도한다. 치성으로 엉킨 매듭을 잘 풀어내는 일, 남은 인생 정성으로 매듭을 바르게 엮는 일 모두 나의 인생 과제다.

뉴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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