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에 있는 세상 
손 안에 있는 세상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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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동화 작가

컴퓨터가 상용되면서부터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엔 어떻게 업무처리를 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첨단 제품 하나가 이렇게 세상을 바꾼다. 통화 기능에 인터넷까지 장착한 휴대폰 역시 우리에게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준 물건이다. 

각종 앱을 다운받으면 휴대폰 하나로 온갖 것을 다 섭렵할 수 있으니 새로운 세계가 손 안에 있는 셈이다.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 한 일이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서로 소통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또 얼마나 좋은가. 종일 ‘카톡 카톡’ 소통하자고 신호가 울린다. 소통의 도구로써는 그만이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무료하고 답답한 시간 멀뚱거리며 앉아 있기보다는 유튜브라도 보면 한결 수월하다. 

그런데 휴대폰 때문에 정작 가까운 사이에는 대화가 힘들어지는 문제도 발생하는 것 같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어느 날이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냉면집으로 들어갈 즈음 회사 로고가 새겨진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너 명이 들어왔다. 식성에 따라 냉면을 시키더니 각자 휴대폰을 꺼냈다. 모두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말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무엇엔가 열중했다.

이윽고 냉면이 나왔다. 후르륵 후르륵. 역시 말없이 먹었다. 먹는 속도가 다 다르니 마지막 사람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며 휴대폰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통 말이 없었다. 아무리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얼굴을 대하는 사이라고 해도 하다못해 ‘이 집 냉면 맛이 괜찮네’ 아니면 ‘물냉면보다 비빔냉면이 더 맛있어 보인다’ 이런 말이라도 오고 갈 법한데 각자 휴대폰과 놀다가 계산을 하고 나갔다.

모녀로 보이는 옆자리 손님도 마찬가지다. 딸은 휴대폰 삼매경에 빠졌다. 엄마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자꾸 말을 걸어 보지만 딸은 듣는 체 마는 체한다. 결국 엄마는 제풀에 지쳐서 포기하는 눈치다. 소통과 단절이 공존하는 양상이다.

그들은 함께 있지만 각자 따로 움직이는 개체일 뿐이고 고독한 군상에 다름이 없었다. 요즘 세태의 한 단면이 아닌가 한다. 나 역시 다 큰 자식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말을 걸기가 어렵다. 다른 가정에서도 예외가 아닐 듯하다.

가족 간 대화 대신 각자 휴대폰으로 타인과 일상을 공유하고 살가운 대화보다는 각자 자기 방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게 더 익숙한 풍경이지 싶다. 가족끼리 대화가 고플 수도 있겠다. 

대화의 단절은 소통의 어려움을 가져오고 자칫하면 세대 간 소통의 단절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소통의 기본은 경청이나 요즘 젊은이들은 꼰대니 라떼니 하면서 세대가 다르다고 미리 귀를 닫아버린다. 경청조차 거부당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소통의 도구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는 오히려 대화를 단절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첨단기기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생겨났지만 인간이 어느 덧 기계에 삶을 맞춰가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변화에 따를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휴대폰과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손 안에 있는 세상은 대화가 넘쳐나지만 그래도 단톡방의 겉도는 대화보다는 눈빛과 표정을 마주하고 여전히 가까운 사람끼리 주고받는 대화가 그립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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