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닥꼬닥 걸으며 만나는 고즈넉한 풍경 눈길
꼬닥꼬닥 걸으며 만나는 고즈넉한 풍경 눈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1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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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高·梁·夫씨가 최초로 입도한 섬 손죽도(巽竹島) - 3
손죽도 비렁길 중간지점에서 본 마을전경.
손죽도 비렁길 중간지점에서 본 마을전경.

# 삼각형 모양의 섬 일주 둘레길 ‘눈길’

섬에 도착해 바로 3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4코스인 삼각산 길을 돌고 왔다. 손죽도 섬 모양은 삼각형으로 이 섬을 도는 둘레길이 있다. 이른 바 ‘손죽도 비렁길’, 비렁은 ‘벼랑’의 여수 사투리로 해안절벽과 해안 단구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다. 비렁길로 유명한 섬은 여수 금오도지만 손죽도 비렁길도 금오도 비렁길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코스다. 제주도 올레처럼 남해안 여러 섬마다 둘레길을 만들어 섬을 찾는 사람들에서 섬 곳곳 비경을 돌아보는 코스를 만들었다. 손죽도는 마재봉을 도는 1코스와 봉화산을 오르는 2코스, 깃대봉 등산 3코스, 그리고 삼각산 4코스와 갯가길이 있다.

1코스부터 4코스를 다 돌면 섬 일주를 마친다. 점심을 먹고 마재봉 길을 찾았다. 선착장 바로 옆 숲길 계단을 따라 오르는 마재봉길, 숲길을 조금 오르자 시누대가 울창한 대나무 숲길이다. 햇볕을 가려주고 그늘이라 걷기는 좋다. 마치 터널 같은 시누대 숲을 빠져나와 시야가 트이자 한낮 태양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늘은 없고 길게 자란 풀밭이 바람을 막아버려 숨이 막힐 지경이다. 괜히 욕심낸 것일까. 후회하면서 이왕 올라왔으니 4시 전까지 손죽도 해금강이라는 1·2코스를 돌아 지지미제 에서 마을로 내려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걷는 것이 예전 같지 않아 조금만 바쁘게 걸어도 숨이 차다. 더위 때문일까? 나이 때문일까? 멀지 않은 곳에 전망대가 보인다.

첫 전망대다. 손죽도 둘레길 대부분 데크 시설을 해놔 걷기에도 편하고 곳곳에 전망대를 설치, 주변 조망이 편하다. 손죽도는 2017년 전라남도의 ‘가보고 싶은 섬’으로 지정돼 40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섬 전체 등산로에 데크와 위험지역 로프와 안전시설을 해놨다.

첫 전망대에 올라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 소거문도와 평도가 아련히 보인다. 배 타면 금방 닿을 것 같은 소거문도, 그러나 배가 하루 한 번 왕복하기 때문에 쉽게 갈 수 없는 섬이란다.

우선 소거문도 전경을 여기서 촬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부지런히 촬영하다 땀을 닦으며 잠시 뒤돌아서니 반대쪽 삼각산 너머로 멀리 고흥반도가 아련하게 나타났다. 옅은 운무로 시야가 흐릿하지만 지난해 초도에 갔을 때 봤던 생각이 떠오른다.

마재봉에서 봉화산으로 가는 길. 멀리 소거문도가 보인다.
마재봉에서 봉화산으로 가는 길. 멀리 소거문도가 보인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섬 전경 ‘장관’

섬에 가면 그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을 올라야 주변 섬들을 볼 수 있어 시간이 허락하면 언제나 오르고 있다. 손죽도 역시 비렁길로 들어서자 주변 섬들이 아무것도 없는 넓은 바다에 점하나 살짝 찍어 놓은 듯 우뚝 솟아있는 모습은 고즈넉해 섬을 찾는 사람들을 황홀케 한다.

조금 걸어가자 넓은 농토가 잡풀로 뒤덮여 방치돼 있다. 섬 지역에 이만큼 넓은 땅이면 큰 농사를 지을 것 같은데 왜 방치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을 때 한 주민이 지난다. “저기 꽤 넓은 땅에 농작물을 심지 않고 있냐”고 물었더니 “예전에는 아주 큰 밭이었지요. 일할 젊은 청년들이 없어 놀리고 있는 것이요” 섬 지역에서는 한 뼘의 땅이라도 농사를 짓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을 봤었는데 손죽도역시 젊은 청년들이 섬을 떠나면서 생기는 문제점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숲을 벗어나 해안선을 옆에 두고 걸어간다. 어떤 곳은 수십 미터 수직 낭떠러지 절벽이다. 여기부터가 ‘손죽도 비렁길’이 시작된다. 제주도 해안에도 해안절벽이 많지만 남해안 섬 지역 절벽하고는 좀 다른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화산암벽과 화강암 절벽 차이랄까. 바다 가운데 작은 암초에 소나무 몇 그루가 기묘하게 자라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남해안 섬을 다니면서 자주 생각하게 하는 풍경 중 크고 작은 무인도에 소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이다.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면 바닷물에 잠길 텐데, 흙 한 줌 없는 저런 바위에서 어떻게 소나무들이 자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별별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억새밭이 넓게 펼쳐진다. 섬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초원이다. 조망이 좋은 곳에는 여지없이 전망대가 있다. 아주 넓고 주변 전망도 좋다. 소거문도, 평도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바닷바람이 살랑 살랑불어 잠시 앉아 손죽도 비렁길 여유를 느껴본다.

섬에 올 때마다 이렇게 시간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걸으며 섬에 정취를 느꼈으면 좋으련만 배 시간 때문에 정신없이 왔다가 빨리빨리 돌아보고 다시 배를 타고 다른 섬으로 가야 하니 아쉽다는 말만 하게 된다. 작은 섬에는 숙박시설이 없고, 어떤 섬은 손님이 없어 배가 정기적으로 운항하지 않아 자칫하면 이틀을 섬에 갇혀있기도 한다.

땀을 훔치고 다시 10여 분 걸으니 세 번째 봉화산 전망대다. 오른쪽으로 손죽마을 전체가 한눈에 조망된다. 울긋불긋 지붕들이 마치 숲속에 있는 듯 아름답다. 봉화산 정상으로 오를수록 비렁길 경치가 장관이다. 깃대봉 정상은 포기하고 여기서 바쁘게 마을로 내려가야겠다. 오후 4시에 소거문도 가는 배를 타야기 때문에 서둘러 선착장으로 달려갔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손죽도 비렁길 중간지점의 해안절벽.
손죽도 비렁길 중간지점의 해안절벽.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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