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읍 남산오롬-표선면 어슴선이 경계에 걸린오롬
성산읍 남산오롬-표선면 어슴선이 경계에 걸린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1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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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걸린오롬

걸린오롬은 정의현성 4거리, 번영로(97번도로)와 중산간동로(1136번도로)가 만나는 곳에서 남산오롬을 돌아 신풍리 쪽으로 1㎞쯤, 농로 가까이에 있다. 걸린오롬은 해발 123.8m이나 표고는 고작 14m에 지나지 않으니 오롬이라고 부르기에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마치 큰 머들 정도로 보인다. 그래서 차를 타고 두어 차례를 오가고 난 후에야 찾았다.

머들은 화산이 터질 때 돌들이 함께 터지고 그 위에는 얕은 흙이 쌓여 나무들이 자라나기도 한다. 곶자왈은 곶(숲)+자왈(돌과 바위)로 자왈과 숲이 어우러진 곳인데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로 쪼개져 울퉁불퉁한 지형으로 나가며 생겨난 곳이다. 나무나 덩굴들이 뒤섞인 곶자왈은 수평이거나 그보다 낮은 곳들이다.

머들도 이처럼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흐르며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곶자왈과 머들은 비슷하다. 그러나 크게 다른 점이라면 지형적으로 볼 때, 수평보다 도드라진 높은 곳들이 많아서 오롬들과 비교해 보면 범위가 아주 작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머들과 오름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으나 크면 오롬이고 작은 언덕이면 머들로 보아도 좋다.

걸린오롬은 거린오롬·걸리오롬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오롬은 정의현 중남쪽(중산간)에 4개의 오롬이 연이어 무리 지어 있다. 정의현에서는 제일 크고 중심인 영루오롬(영주산) 앞에 남산오롬(신풍리)이 있고 그 오른(서)쪽에는 잡탈(본지오롬/삼달리)이 있다. 남산오롬 아래(남)쪽에는 걸린오롬(신풍리)이 있고 그 아래(남)쪽, 표선면에는 어슴선이(하천리)가 있다.

김승태는 그의 저서 ‘제주의 오롬 368’에서 “이 오롬을 풍수지리학적으로 관련 지어서 배고픔에 굶주린 걸인(걸린·걸리)의 형국으로 풀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갈뫼못(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으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동의 되지 않는다.

한라산 동북쪽에서 이 오롬 저 오롬의 물들이 남동으로 흘러서 조천읍→구좌읍→성산읍을 거쳐서 성산읍과 표선면을 경계 지으며 바다로 흐른다. 성산읍 걸린오롬(신풍리)은 표선면 어슴선이오롬(하천리) 사이로 큰 하천을 이루게 된다. 이 큰물이 동남쪽, 성산읍 신풍리와 서남쪽, 표선면 하천리를 나누는 천미천이 되어 비로소 제주 동녘 바다로 흘러간다.

여름 한 철 한라산 중산간에 비가 내리면 조천읍 교래리는 큰 내(大川)가 터진다. 급속히 흐르는 큰 내는 “솨솨솨솨…”소리 내며 흰 머리를 들고 누런 몸뚱이를 비틀며 흐르는 것이 마치 큰 구렁이가 용이 되려고 바다를 향해 쏜살같이 질주하는 모습처럼 가히 위력적이다. 필자는 여름 천미천에서 쉬(牛馬)를 먹이다가 큰물에 휩쓸려갔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거린·걸리·걸린’이란 말은 다르지 않고, 같은 말의 다른 표현으로 보인다. 이 말은 ‘가지가 걸리다, 도랑물이 걸리다. 인간관계가 얽히고 설키다.’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즉 독립된 개체가 연결됨을 뜻한다. 오롬도 ‘나뭇가지, 도랑물이나 인간관계처럼 연결된다’는 의미로 걸린오롬은 성산읍의 남산오롬(신풍리)과 표선면의 어슴선이(하천리)에 걸려(걸처) 있다는 말이며 거(걸)+리에서 ‘ㄴ’자를 더하여 명사화시킨 제주어로 보인다.

걸린오롬은 둘레가 405m로 반 킬로가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오롬이다. 또한 면적(11,449㎡), 저경 162m의 원추형 오롬이다. 걸린오롬을 다른 오롬들과 비교해 보면 성산읍 섭지코지 붉은오롬 둘레(343m)보다 조금 크고, 저경(162m)은 섭지코지 붉은오롬 저경(109m)보다 조금 길지만, 높이(14m)는 붉은오롬(28m)의 절반이다.

제주도의 368개 오롬 중에 저경과 높이(비고)를 비교해 보면 가새기오롬(오라동)은 저경167m/높이20m·족은노리손이(봉개동)저경149/높이29·논오롬(삼양동)저경157/높이13m·방주오롬(명월리)저경132/높이8m·밝은오롬(금악리)저경175/높이15m·가메창(저지리)저경135/높이8m·보름이(무릉리)저경147/높이14m·좌보미알오롬(성읍리)저경174/높이23m와 비교된다. 이 10개의 오롬들은 저경 200m미만, 높이 30m미만의 초미니 오롬들이다.

여름 풀밭에 퍼질러 앉은 걸린오롬은 잡초들에 파묻혀 조용하다. 오롬에는 크지 않은 소나무들과 천선과·예덕나무·사스레피 등이 망개(청미래)나무와 넝쿨들에 얽매여 마치 머리를 풀어헤치고 침입자를 가로막는 야생녀를 닮아 슬프다. 돌아오는 길에 계속 생각 든다. 몇 대의 불도저가 투입되면 이삼일 내에 항복하고 사라질 것 같아 벌써 마음 아프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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