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한 컷
청춘의 한 컷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1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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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 시인

요즘 드라마 ‘킹더랜드’에 빠져 있다. 웃음을 경멸하는 구원과 웃어야만 하는 웃음퀸 천사랑이 호텔리어들의 꿈인 VVIP 라운지 '킹더랜드'에서 진짜 웃음을 만들어가는 스토리다.

귀여운 타입 이준호와 예쁜 이미지 김윤아의 조합이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 혹자는 이 뒤늦은 나이에 청춘드라마에 웬말이냐고 비웃을 수 있지만 청춘시대에 나의 세 번째 직장이 호텔이었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나는 성공을 위하여 무작정 상경했다가 오빠 결혼식 빌미로 귀향했다. 못 견딘 건 향수 때문이었다.

고향에 내려온 나는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호텔종사원 자격증을 따고 프런트캐셔로 지정되어 결혼 전까지 3년간 일했다.
‘킹더랜드’를 보면서 까마득하게 잊고 살던 삼십여 전 그때의 이런저런 해프닝들이 떠올라 피식 웃는다. 내가 다니는 G호텔에도 회장님 아들이 가끔씩 일본에서 내려오곤 했다. 꼭 주인공 이준호 같은 인상의 멋진 왕자님이었다.

"너무 잘 생겼다!" "한 번 단둘이 만나 보았으면 좋겠다!"  "미스 김이 그 왕자님을 좋아한대요!"

마치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미스들에겐 한 번쯤 꿈꾸어보는 생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렇게 소문은 자자했지만 막상 사귄다는 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더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나와 동갑이면서 파트너인 프런트캐셔 미스 리가 회장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자그마한 키에 반짝이는 두 눈망울, 누구에게나 호감가는 스타일이었다. 문득 그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찾아갔던 작고 허술한 집이 눈에 선하다. 그것과 맞물려 그녀가 툭 하면 내뱉던 허황된 상상의 말들이 떠올랐다.

"언제쯤 나에게 근사한 자가용이 생길까?"  "언제쯤 나만의 점포가 생길까?"

얼마 후 그녀는 사직서를 내고 칠성통에 옷가게를 냈다. 또 얼마가지 않아 메이커 속옷 가게로 바꾸고 잘 나가는 여사장님이 되었다.

소설처럼 더 놀랄 일은 그녀가 결국 회장님의 네 번째 부인이 되고 아들까지 낳아 사모님 행세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문까지 접하게 되었다. 그런 상상치 못할 이야기가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몹시 놀랐다. 책을 좋아하던 나는 소설은 단지 소설로 끝나는 픽션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던 순간이기도 하다.

‘부럽다’보다는 ‘불가사의하다’라는 느낌이었고, 지금 생각은 ‘행복하면 된 거다’로 봉착된다.

나는 평범한 남자 만나서 두 아이 낳고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시를 쓰고 있지만 아직도 청춘의 어느 문턱에 그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애련, 혹은 그리움 같은 그림자.

우리네 삶은 미스터리로 가득하지만 그 미스터리를 뒤엎는 진실과 간절함이 빚은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자신이 간절하게 그리던 ‘꿈은 이루어진다’고 감히 장담해 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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