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류
미국의 한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1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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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동국대 영상대학원 부교수

근 30년 만에 미국을 다녀왔다. 전에 갔던 게 1994년 LA 월드컵 때이고 당시 한국에서는 조용했지만 미국 내에서는 한국에서 곧 전쟁이 난다는 뉴스가 빈번하게 들려오던 때이다. 마음이 다급해서 제주도에 전화해 보면 식구들은 사재기 현상도 전혀 없는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반면 미국 내 LA 교민 라디오에서도 한반도 전쟁 위험 고조가 핫 이슈였다. 서울을 가는 비행기는 텅텅 비었지만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을 빠져나오는 모든 비행기는 자리가 없어서 난리라고 방송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오랫동안 잊지 못 할 씁쓸한 방송을 듣게 된다.

“이스라엘 젊은이는 이스라엘에 전쟁이 나니 조국을 위해 돌아가던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라고 리포터가 한국 유학생과 교민 젊은이들에 물은 결과이다. “내가, 왜요?”, “부모님도 다 나왔어요, 근데 제가 왜 가요?” 등의 대답이었다.

결국 지도층과 부자들은 당시의 한반도 전쟁 위협을 알고 빠져나오는데 겨우 집 한 채, 전세 하나 들고 있는 서민들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싸우는, 어쩌면 임진왜란 때의 일이 반복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때이다. 

30년 전 미국은 세계 최강 대국으로서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풍요와 질서, 자유가 있었다. 좀 과하게 얘기하면 거지도 입성 좋고 영어를 잘하는 미국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 본 미국은 실망이 컸다. 첫 충격은 마약에 찌든 노숙자들에게서 왔다. 많은 도시의 다운타운을 점령하고 있는 그들의 숫자가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았고 그로 인해 도심은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 많았다. 따라서 가게들과 도로 사정도 도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과 비교해서 더 좋다는 곳은 많지 않았다. 자유가 너무 과한 것일까? 

범죄인과의 고속도로 추격전을 방송 헬기 카메라가 따라다니면서 방송하는 나라, 도로에 카메라가 별로 없어 우리보다는 훨씬 벌금과 통행세를 안 내고 프라이버시는 보장되지만 사회안전망 보장을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나라가 미국이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세계 최강국 지위를 유지하는 미국의 비결이 궁금해 질정도였다. 그것은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용과 다양성, 프라이버시 존중 등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치는, 어쩌면 우리가 아직 갖지 못 한 덕목일지도 모른다.   

미국 라디오에서 처음 한국 가요를 들었을 때는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어 가사의 노래를 듣는 기분은 정말 뿌듯했지만 자주 듣다 보니 약간의 한국 가사가 없으면, 모르고 들으면 미국 노래인지 한국 노래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에는 조금 실망을 했다. 한국 가요의 스타일과 가창이 최근에 히트하는 미국 가요들과 너무 흡사해서 ‘우리 고유의 것이 없어지고 글로벌화에 흡수되어 버린 게 아닌가?’라는 우려가 들었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제대로 들어갔구나’라는 생각은 들지만 살아남아서 한국 호랑이가 되기에는 아직 시간과 정성이 더 필요하겠다고 절감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가요와 드라마, 영화, 음식 등이 미국 문화 사회 전반에 뻗친 뿌리는 깊고도 크다는 느낌은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우리에게 더 이상 놀랍거나 위대한 나라가 아니다. 어느 덧 문화와 산업 전반에서 이룬 우리의 성취가 더 커서 최소한 그들과 장단점을 비교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왔다고 많은 사람이 얘기한다. 어느 경우든 이제 한류로 대표되는 한국문화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충분히 확인되었다. 이제 그들, 세계인을 향하여 우리 한민족이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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