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두 암봉이 맞이 하는 손죽도…왜구와 맞서 싸운 이대원 장군의 혼이 깃든 섬 
거대한 두 암봉이 맞이 하는 손죽도…왜구와 맞서 싸운 이대원 장군의 혼이 깃든 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0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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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高·梁·夫씨가 최초로 입도한 섬 손죽도(巽竹島) - 2
삼각산 정상의 거대한 암봉.
삼각산 정상의 거대한 암봉.

# 울긋불긋 마을지붕-짙은 녹음 색채감 어울려

손죽도는 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마치 반달 모양으로 배열됐고 끝자락에 삼각산이란 돌산이 우뚝 솟아 있다. 배 타고 선착장으로 들어갈 때 첫 눈에 만나는 산이 삼각산이다. 삼각산을 가기 위해 마을 해안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모래사장을 만난다. 200m쯤 되는 모래사장은 손죽도 마을 앞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한 가족이 파라솔을 펼쳐놓고 수영을 즐기고 있다. 어느 섬들처럼 마을 지붕 색깔이 울긋불긋, 산의 짙은 녹음과 잘 어울리는 색채감이다.

섬을 걷기 시작해 30분도 안 됐는데 벌써 땀이 비오듯 쏟아져 손수건을 연신 훔친다. 우거진 풀 속에 망주석이 있는 것이 아마도 큰 묘지인 것 같은데 풀이 너무 자라 알아볼 수가 없다. 가파른 언덕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부는 것이 섬임을 느끼게 한다. 우거진 풀 사이에 동상이 서 있다. 모습은 장군상인데 누굴까, 풀을 헤치며 올라가 보니 이대원 장군 동상이다. 이대원 장군 동상은 선착장 한 모퉁이에 있었는데 마을 안내도를 보니 아까 올 때 본 큰 묘가 이대원 장군 묘이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상을 세웠으나 너무 멀어 다시 선착장에 새로운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아침이면 주민들의 걷기 운동을 하는 운동장이 되는 마을 앞 모래사장
아침이면 주민들의 걷기 운동을 하는 운동장이 되는 마을 앞 모래사장

# 이대원 장군 묘-동상-사당 눈길

경기도 평택 출신 이대원(李大源)장군은 1583년(선조 16년)무과에 급제해 가장 젊은 나이 21세에 녹도 만호(鹿島 萬戶)가 되어 1587년 전라 좌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로 임명됐고, 임진왜란 5년전 1587년 2월 10일 손죽도 인근 해상에 침공한 왜구 20여 척을 대파하고 큰 승리를 거뒀다. 왜장을 사로잡아 수사(水使) 심암(沈巖)에게 압송하였다. 그러나 전공을 자기 것으로 하자는 심암의 부탁을 거절하자 미움과 감정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지원을 하지 않았다. 패전 당한 왜구들이 더 많은 전함을 이끌고 재침하려 할 때 이대원 장군은 전열을 정비하고 출전하려 하였으나 수사 심암은 해는 저물고 충원군 지원도 해 주지 않으며 억지로 출전 명령을 내려 3일간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를 지켜본 백성들이 분노하여 이대원 장군을 전사하도록 한 것은 수사 심암의 계략이란 것을 알고 조정에 상소를 올렸다. 심암의 실상을 낱낱이 조사하여 선조에게 장계를 올려 심암을 한양으로 압송, 효수형에 처형됐다. 이순신 장군은 이대원 장군을 잃은 것은 국가에 큰 손실이라 하여 이 섬을 손대도(損大島)라 명명하기도 했었다.

“해 저무는 진중에 왜군이 바다 건너오니 군사는 외롭고 힘이 없어 죽으니 서글프다. 임금과 부모님께 충효를 보답하지 못하니 한 스러움과 먹구름이 엉켜 풀 길이 없네” 비문 끝에 적힌 절명시(絶命詩)다.

3일동안 치열한 전투가 끝난 다음 해안가에 밀려온 이 장군과 병사들의 시신을 모아서 섬 주민들이 장사를 지냈다. 1637년(인조 15년)사당이 처음 건립되어 손죽도 주민들은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1983년 마을 주민들의 정성이 담긴 성금으로 대지 60평에 건평 5평의 목조 기와집으로 사당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매년 3월3일 숭모제(崇慕祭)를 모시고 있다. 왜구와 싸운 젊은 장수 이대원 장군 사당과 묘역은 조국방위 성지로 문화제 128호로 지정되었다. 섬에 들어오면서 이대원 장군의 기록을 보기는 했지만 동상에 적힌 자세한 기록을 살펴보니 지금껏 몰랐던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됐다.

삼각산 가는 곳에 서 있는 이대원 장군 동상.
삼각산 가는 곳에 서 있는 이대원 장군 동상.

# 삼각산 정상서 바라본 시원한 전경

기록을 살피느라 한참 동안 쭈그렸다 일어서자 온몸에 땀이 흠뻑 하다. 삼각산 오르는 길은 해안 절벽에 계단으로 만들어진 코스다. 안전하기는 하지만 계단이 가파라 헉헉거린다. 물을 마셔도 금방 목이 타오고, 가져온 얼음물도 바닥이 났다. 숲길과 계단을 반복하여 오르다 보니 정상이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손죽도 전체를 관망할 수 있고 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그동안 계속된 장마로 한달 만에 드론을 띄웠다.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손죽도와 소거문도는 바로 이웃이다. 멀리 바다에는 어디 갔다 오는지 작은 보트가 하얀 물살을 가르며 달리고 있어 한 폭의 그림처럼 시원하다. 이 더위에 갯바위에 앉아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손죽도를 상징하는 삼각산은 원래 3봉우리였는데 장사 한 분이 이 산을 보고 앞에 봉우리가 뒤에 두 봉우리를 가리고 있어 명산이 되지 못한다고 하여 앞에 봉우리를 밀어서 밑으로 굴러 내렸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도 삼각산 밑 바닷가에는 굴러온 큰 바위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돌을 장사 꽁돌 이라 부른다. 위에서 보니 커다란 바위산 두 개가 우뚝 솟아 있고 그중 하나만 오를 수 있다. 아침에 같은 배를 타고 온 분이 땀을 뻘뻘 흘리며 전망대로 올라온다. “어디로 돌아서 왔습니까”, “깃대봉 올랐다 여기 왔는데 돌아보니 참 아름다운 섬입니다” 오후 배로 나가기 때문에 섬을 다 돌아보지 못해 아쉽다며 기회가 있으면 다시 오고 싶다고 한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손죽도 선착장.
손죽도 선착장.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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