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제주 자생식물 분류·조사한 日 학자의 보고서
1910년대 제주 자생식물 분류·조사한 日 학자의 보고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07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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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병완도식물조사보고서(朝鮮總督府 1914)
제주도병완도식물조사보고서 표지.
제주도병완도식물조사보고서 표지.

헌책을 좋아하는 분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나뉘는 부분이 하나있다. 아무리 헌책이라도 깨끗한 걸 좋아하는 분들과 전 주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걸 괘념치 않거나 외려 더 선호하는 분들로 구분할 수 있다.

어느 편이 더 좋다고 할 수 있는 범주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취향이긴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흔적이 남아있는 걸 더 선호한다. 그 책에 남아있는 흔적을 통해서 지나온 세월을 온전히 파악할 수도 있고 전 주인이 남긴 낙서를 통해 내가 읽으면서는 생각지도 못 한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책들은 문제가 될 때도 있다. 특히 (등록) 취소인(取消印)이 없는 도서관 등의 장서인이 찍힌 책들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기관에서 폐기된 책들 가운데 일부는 우리 같은 헌책방으로 흘러들어오게 마련이지만 그러다 보면 개중에는 진짜 장물(贓物)이 섞여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으로 폐기된 책에도 취소인이 없는 경우가 많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장서인이 찍혀 있는 책들이 모두 이렇게 문제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책들 특히 세상에 나온 지 오래된 책들 가운데는 그 장서인으로 인해 더욱 가치가 높아지는 경우도 많다. 꼭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그 책이 갖는 자료적인 의미가 더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얼마 전에 입수한 자료 가운데 그런 책 한 권을 소개해 보련다.

바로 ‘제주도병완도식물조사보고서(濟州島竝莞島植物調査報告書)’(1914)이다.

제주도 지도.
제주도 지도.

지은이는 일본의 식물분류학자로, 특히 조선식물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이다. 그의 제주도 식물연구는 전에 소개한 바 있는 이치카와 상키가 곤충과 함께 채집했던 식물표본을 감정했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로도 다양한 감정 의뢰를 받아 계속되다가 직접 내도(來島)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싶었던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조선총독부의 야생식물 조사를 의뢰받았던 1913년으로 그렇게 나온 첫 번째 조선식물 조사보고서가 바로 이 책이다.

이 보고서에서 제주도의 자생식물은 총 1317종(種), 그 중 특산 식물은 78종이고 이 연구로 세계에 신발견 식물로 검증받아야할 게 34종이며 기존의 채집과 연구에 의해 알려졌던 제주도산 자생식물에 약 400종의 식물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또 초여름 30일 간의 시찰과 채집으로도 이와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건 당시 제주도에 머물면서 식물을 채집해서 구미(歐美)의 박물관에 판매했던 선교사 다케(タケー)의 개인 소장품 7000여 점을 양도받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살포시 찍혀 있는 장서인의 주인공은 우리 한반도를 ‘토끼’와 비유해서 ‘호랑이’를 자처하는 우리에게 원성(?)이 자자한 일본의 대표적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다.

본인에 앞서 제주 자생식물 900여 종에 이름을 지은 유럽인들이 ‘식물학적으로 제주도를 점령했다’고 분개했다는 지은이도 상당수의 우리나라 토종식물 학명에 자신의 이름(Nakai)를 붙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놈이 그 놈이다.

하긴 그들에게 그 시대의 우리는 그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걸 가진지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식민지의 주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리라. 그럼 지금은 진정 깨어있는가. 내 모습은 여전히 부끄럽기만 하다.

제주도 식물분포 상태도.
제주도 식물분포 상태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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