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밭담·입구에 세워진 정주먹, 시골정취 물씬 풍겨
낮은 밭담·입구에 세워진 정주먹, 시골정취 물씬 풍겨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0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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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한림읍 동명리 수류천 밭담길
복원된 명월진성 부분.
복원된 명월진성 부분.

■ 물이 좋기로 이름난 마을

명월(明月)은 예부터 물이 좋기로 유명하다. 마을이 번성하여 조선 철종 2년(1861)에 명월리, 상명리, 동명리로 나뉘었다.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1702) ‘명월조점(明月操占)’에 명월진성 서쪽으로 ‘수류천촌(水流川村)’이 나타나는데 이곳 밭담길 이름은 그 지명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제주시에서 291번이나 292번 버스를 타고 동명리 정류소에서 내려, 명월성로(1120)를 통해 한림중학교를 지나면 ‘동명리 콩창고(농협창고 옛 건물)’가 나타나는데, 그 앞에 출발점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출발하여 황룡사 입구, 명월성지, 명월교차로를 지나 동명5길과 동명7길을 거쳐 한림중앙로로 나왔다가, 동명3길을 통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약 3.3㎞의 밭담길은 50분 정도가 소요된다.

마을에 흐르는 물.
마을에 흐르는 물.

■ 물이 좋아서인지 절도 많아

지금이야 상수도와 농업용수 시설이 좋아 집집마다 생활용수가 공급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하던 시절, 이곳에는 개명물이나 문두물 같은 공동물터가 있어 마을사람들이 즐겨 이용했었다. 출발점을 지나면 조금 넓은 공터 한구석에 개명물이 아직도 남아 있고, 주차공간과 쉬어갈 수 있는 나무그늘 쉼터도 있다.

그곳 황룡사 입구를 지나면 ‘천불선원’이라고 쓴 골목길에 밭담길 표지석이 보인다. 얼마 안 가 ‘제덕문(濟德門)’이라 쓴 현판과 ‘천불사(千佛寺)’라 쓴 간판, 그리고 울타리 너머 종각과 탑, ‘천불전(千佛殿)’이 나타난다. 규모가 제법 커 보이는데, 조금 더 간 곳에도 골목 안으로 ‘극락사(極樂寺)’가 있다.

골목 안에 넓은 면적을 차지한 한림정수장이 있으나, 평소 개방되지 않은 곳이다. 이웃하여 옹포천과 ‘강상이물교’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다리가 있으나, 그냥 명월성지로 통하는 ‘한수풀 역사순례길’ 표지판을 따라 올라간다.

길 가운데로 난 물길.
길 가운데로 난 물길.

■ 일부 복원해 놓은 명월진성

정리가 덜된 밭담길을 걸어 나가니 새로 복원된 성곽과 남문이 보인다. 현장에 걸어놓은 안내문에는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제29호 ‘명월성지(明月城址)’라 되어 있다.

진성(鎭城)은 왜구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축조된 역사유적이다. 명월진성은 중종 5년(1510) 제주목사 장림(張琳)이 비양도가 왜구가 침범하기 쉬운 곳이라고 판단해 명월포에 나무로 쌓은 성이었다. 이후 선조 25년(1592)에 제주목사 이경록(李慶祿)이 석성(石城)으로 개축한 것이 오늘날의 명월진성이다. 성의 규모는 둘레 1360m, 높이 4.2m이며, 동․서․남쪽에 성문이 있었다. 성안에는 진사(3칸), 객사(3칸), 사령방(2칸), 무기고(4칸), 도청(4칸), 진고(4칸), 창고 4동(각 2칸)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샘물이 마치 냇물처럼 솟아나 사계절 물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영조 40년(1764) 어사 이수봉(李壽鳳)이 임금께 아뢰어 조방장의 만호 승격을 건의했다. 지금은 남문과 문을 보호하는 옹성, 초루, 치, 외곽도가 복원되었으며, 경내에는 1999년 당시 북제주군에서 세운 역대 만호의 이름과 재직기간을 새긴 기다란 비석이 있다.

개똥참외.
개똥참외.

■ 펜션이 여럿 들어선 동명5길과 7길

성터에서 나와 명월교차로 남쪽 길로 들어서면 바로 동쪽으로 밭담길이 이어진다. 동명5길인데 그리 넓지 않은 밭담길로 시골정취가 물씬 풍긴다. 길섶에 오랜만에 만나는 어저귀(어주에)와 개똥참외(갈재기)가 반갑다. 어저귀는 까맣게 씨방이 여물고, 개똥참외는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요즘 누가 눈여겨보지 않는지 여남은 개가 올망졸망 모여 있다.

밭담들은 세계중요농업유산 지정 후 관에서 지시를 했는지, 한결같이 밭담을 낮게 쌓고 입구에 정주먹(정낭을 거는 3개의 구멍이 뚫린 돌)을 세웠다. 일부 밭들은 손을 보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고 공터엔 칡넝쿨이 덮였다. 과거 곡식 값이 좋았을 때는 모두 농사를 지었는데, 요즘은 수지타산 때문에 이렇게 손을 놓은 곳이 생기는 것이리라.

이곳은 제주시에서도 멀고 마을에서도 동떨어진 높은 지대이지만 펜션이 여럿 들어섰다. 규모가 좀 작지만 꽃을 잘 가꾼 곳도 있고, 호텔형 민박까지 들어섰다. 멀지만 바다가 보이고 비양도도 눈에 띈다.

콩밭.
콩밭.

■ 가운데로 도랑이 이어진 길

한림에서 금악으로 통하는 넓은 도로 한림중앙로로 잠시 나왔다가 왼쪽 동명3길로 들어서면 바로 마을까지 통하는 농로다. 특이하게 길 가운데로 도랑 같은 물길이 마을 가까이까지 이어진다. 그 때문에 물길 양쪽에 커다란 돌들을 세워 안전을 꾀했다. 여름이어서 물길 안은 모시풀이 가득하다.

마을까지 가는 동안 빈 밭으로 둔 곳은 양배추나 브로콜리 같은 작물을 심을 것으로 보이고, 과수원은 안 보이나 콩밭이 제법 많다. 얼마 전까지 콩 값이 좋아 콩을 많이 재배했는지 농협창고는 ‘콩창고’로 부를 정도이고, 지금은 마을에서 창고 내부를 조금 개조해 콩국수를 만들어 팔고 있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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