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후’(邂逅)
‘해후’(邂逅)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9.0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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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칠 작곡가·음악평론가·논설위원

‘길가에 노란 잎새 질 때/잎새처럼 물들고/눈길로 주고 받던 사랑/눈물이 앞을 가리네’-서광일 시(대중가요 ‘해후’(최성수 노래)는 1987년 나왔다.

1976년 가을 당시는 대학 2학년이었다. 군대를 다녀와서 마음먹은 바가 있어 앞산(대구) 산사(山寺)인 묘관음사(妙觀音寺)란 절에서 묵고 있었다.

그때에는 철학에 관심이 있어 세계사상전집(50권)을 구입해 2학년 겨울 방학 기간까지 독파를 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군악대 근무를 하면서 알게 된 선임 병장으로부터 음악과 철학과의 관계를 배우고 나서 군 제대 후에 철학과(哲學科) 청강을 하면서 철학에 관한 책을 읽고 강의를 관심 있게 듣게 됐다. 그러다가 거처를 산사로 옮기고 써클·철학과 후배가 산사에서 지내고 싶다고 졸라 옆방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10월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방에서 한참 공부를 하는데 밖에서 ‘형, 형님’하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 보니 군인이 서 있는 것이었다. 보니 써클 후배였다. 너무나 반가워 밖으로 나가 오랜만에 인사를 했다. 이날 산사(山寺)의 가을밤 분위기는 대화를 하기에는 조용하고 술술 이야기가 풀려 나가는 시간이었다. 한참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는 언제 휴가를 나왔느냐고 물었다. 후배의 대답은 오늘 나왔다는 얘기와 군에 갈 때에 사귀는 여자가 있었는데 군에서 몇 번이나 편지를 해도 답장이 없어서 혹시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휴가를 나오자마자 애인 집으로 찾아가서 초인종을 누르고 몇 시간을 대문에서 기다려도 결국은 만날 수가 없어서 집에 가지 못하고 실망해 나에게로 찾아 왔다는 것이다. 후배의 아픈 사랑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얘기를 듣는 나의 마음도 아파 왔다.

후배의 얘기를 들은 철학과 후배가 잠시 방으로 들어가서 노트와 펜을 가져다가 10여 분 간을 긁적거리더니 ‘해후’라는 제목으로 시를 적고는 우리들에게 낭송을 하는 것이었다. 위의 가사는 그 시의 시작 부분이다.

‘~친구와 마주 앉아 함께/지난 이야기로 지냈네/사랑에 여울 치던 날을 눈물로 손을 잡았네/바람은 불어 가슴을 치고/내 눈물 마르는 날들 돌아와/그대 날 찾는다 해도 젊음이 가니/아!~ 나는 어찌할건가//’

가사를 받아든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작곡을 시작했다. 10여 분 만에 곡을 완성을 해서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후배들은 좋다 하면서 곡을 순식간에 익혔다.

그 후 많은 시간이 지났다 휴가를 나온 후배는 복학해 졸업을 하고 시내의 사립 중학교 미술 교사로 활동을 하다가 교장선생이 돼 퇴임을 했고, 철학을 하는 후배는 대학 졸업 후 독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을 했는데 대학에 교수로 임용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오랜 지병(암)으로 하필이면 그 때 아깝게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됐다.

미술을 하는 후배는 정년퇴임 후에 제일 먼저 제주를 방문해 한달살이를 했다. 승용차를 제주까지 끌고 와서는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린다. 제주의 일출과 일몰만을 그려서 벌써 제주를 주제로 세 번째 개인전을 했다. 제주에는 벌써 5~6회를 다녀갔다. 몇 년 전에는 내가 ‘해후’를 나의 가곡 발표회에서 발표를 했다. 내가 무대에서 작곡과 작사가인 주인공을 직접 소개를 하는 순서를 가졌다. 그의 옆에는(‘해후’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는) 현재의 아내가 웃으면서 앉아 있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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