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감’한 게 좋다
‘둔감’한 게 좋다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3.09.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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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老子)의 황석공(黃石公) 삼략(三略)에 나오는 글 하나.

‘柔能勝剛 弱能勝強’ (유능승강 약능승강,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길 수 있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다)

30여 년 전 지금은 고인이 된 어느 선생님이 내게 이런 글을 주었다.

필자의 집 거실에 아직도 걸려 있어서 그냥 자꾸 보게 된다. 나는 요즘 이 글을 보다가 이런 생각을 한다.

‘鈍能勝敏’(둔능승민). “둔감한 것이 민감한 것을 이길 수 있다”

어느새 가을이다. 사람들이 계절의 변화에 가을을 타는 것 같다. ‘가을을 탄다’라는 표현의 ‘타다’는 ‘계절과 기후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는 뜻이다. 갑작스럽게 기온이 떨어지면서 마음이 쓸쓸해지고, 때론 공허함마저 들기도 하는 기분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신호인지 자꾸 눈도 가렵다. 안과에 갔더니 물 안약 처방하고 끝이다. 가렵다고 문지르면 벌겋게 눈이 충혈되고 안약을 몇 방울 떨어뜨리면 가라앉은 듯했다가도 다시 가렵고 그러다보면 신경이 더 예민해진다. 이런 증상을 최소화하려면 처음부터 문지르지 않고 참는 게 최고다. 예민하게 굴면서 자꾸 눈 주위를 문질러봤자 도지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 누군가로부터 말 또는 행동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천성적으로 둔감해서 잘 느끼지 못하면 가장 좋다. 그게 아니라면 알아들어도 모른체 하고 덤덤하게 넘어가는 편이 상처를 악화시키지 않고 빨리 낫게 한다.

일본의 작가 와타나베 준이치(渡邊淳一)가 ‘둔감력(鈍感力)’이란 책에서 밝힌 내용이다.

▲사실 민감(敏感)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둔감(鈍感)한 것도 건강과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이다. ‘예민함과 순수함’은 오히려 인생의 함정이 될 수 있다. 무심한 듯 대범해서 어지간한 일에도 뒤집히지 않아야 스트레스도 덜 받아 병에 걸리지 않고, 이 풍진세상 인생살이가 모두 평탄하게 유지해갈 수 있다고 한다.

왜 아니랴. “이 또한 지나 가리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남의 말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무심히 살다 보면, 새옹지마(塞翁之馬)인 일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어떤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사기’를 당해 큰 손해를 보더라도 “당장 죽겠다”고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나쳐보라고 한다. 속이 상해서 어두운 얼굴로 다녀봤자 마음만 쓰라릴 뿐, 자기만 손해다.

▲똑같이 상한 음식을 먹어도 둔감한 사람은 아프지 않거나 덜 아프다고 한다. 또 마음의 상처는 되씹으면 되씹을수록 강도가 더해진다고 하니까.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해 둔감해져 볼 일이다.

사람을 쓰러뜨리는 건 산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라고 하지 않던가.

둔감한 게 좋다.

“아들이 다리를 크게 다치자 노인은 낙심했는 데, 전쟁이 나서 모든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가야 했지만 장애가 있던 노인의 아들은 면제가 되었다. 전쟁터에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으나 장애가 있던 이 노인의 아들은 목숨을 건졌다.”

‘새옹지마’ 얘기가 실감나는 가을 초입이다.

풋살경기장 갔다오는 길, 코끝을 간지르는 바람의 내음과 샛깔도 다르다.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높고 푸르다. 이 가을엔 나도 어디로든 떠나 크게 웃어야겠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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