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돌로 촘촘히 쌓아 만든 마을 상징 같은 안성창
크고 작은 돌로 촘촘히 쌓아 만든 마을 상징 같은 안성창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8.3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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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高·梁·夫씨가 최초로 입도한 섬 손죽도(巽竹島) - 1
손죽도 입구에 우뚝 선 바위산 삼각산 위에서 내려다 본 손죽도.
손죽도 입구에 우뚝 선 바위산 삼각산 위에서 내려다 본 손죽도.

# 하늘에서 바라보면 삼각형 모양의 섬

400여 년 전 제주에서 온 고·양·부씨가 처음 이 섬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손죽도(巽竹島)는 전남 여수시 삼산면에 딸린 섬으로 주변 소거문도와 평도·광도를 합쳐 손죽열도라 부른다. 섬 면적은 2.919㎢, 해안선 길이 11.6㎞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삼각형 모양의 섬이다.

손죽도로 가는 배편은 여수와 고흥 두 곳에서 쾌속선이 다니고 있으나 고흥 녹동항에서 다니는 쾌속선은 계절에 따라 결항이 잦아 배 시간이 조금 길어도 여수에서 거문도 가는 배편을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쾌속선은 고흥 녹동항에선 1시간, 여수에선 1시간 30분이면 손죽도에 도착한다.

섬 자료를 뒤지다가 문득 제주도 고·양·부씨가 처음 입도해 사람이 살기 시작한 섬이 손죽도란 것을 알고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진도지역 섬들 중 제주 사람들이 처음으로 들어가 산 섬이 몇 곳이 있었지만 고·양·부 세 성씨가 함께 들어가 산 것은 손죽도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거문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초도에서 하루를 묶고 아침 배로 나오면서 잠시 본 손죽도, 이 섬을 가기 위해 몇 차례 고흥 녹동항에 갔다. 처음 갔을 때는 코로나로 손님이 없어 잠시 휴항이었고 다음은 여수에서 나로도를 거쳐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나로도항에 갔으나 이번에는 선박사 사정 탓에 잠정적으로 이 항에 입항하지 않고 바로 손죽도로 가고 있어 여수 연안여객터미널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섬 지역 다니는 배편이 자주 바뀌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결항해 섬 찾아다니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어 백도 찾는 관광객이 늘어 배편이 많을 것 같아 여수 가는 배를 탔다. 달리는 배에서 낙조를 감상하며 오후 9시 여수엑스포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여수까지 배를 타고 온 것은 처음이다. 내일 손죽도 가는 배편을 확인하기 위해 바쁘게 연안여객터미널에 갔으나 문 닫아 시간을 알 수가 없다.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한 주민을 만나 시간을 들어보니 오전 8시에 배가 출항한단다.

다음 날 일찍 서둘러 여수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손죽도 가는 배표를 손에 쥐니 ‘이제야 손죽도 간다’ 안심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졌다. 코로나 사태 전에는 지금 때면 백도를 찾는 관광객이 밀려 배표 구하기가 어려울 만큼 승객이 몰렸는데 오늘은 손님이 많지 않은지 대합실이 한산하다.

여수항을 천천히 빠져나간 쾌속선이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유리창에 물보라가 날린다. 어젯밤 내일 날씨를 걱정하다 잠을 설쳐 잠깐 잠이 들었던지 어느새 손죽도 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다. 나로도를 경유하지 않고 바로 왔기 때문에 일찍 도착한 모양이다. 손죽도에 손님을 내린 쾌속선은 거문도를 향해 서서히 항구를 빠져나간다.

마을 앞 해수욕장 한 쪽에 있는 안성창.
마을 앞 해수욕장 한 쪽에 있는 안성창.

# 제주 고·양·부씨가 살던 고부량터 눈길

손님 마중 나온 차들이 빠져나가자 한가로운 항구, “오늘 소거문도 가는 배 어데서 출발하느냐”고 물었더니 저 섬사랑호에 물어보란다.

배를 손질하는 선원이 보여 잠시 문답을 나눴다

“오늘 소거문도 갈려는데 몇 시에 출발합니까?”, “어디서 왔소. 소거문도는 왜 갑니까. 오늘 거기서 자요? 아니면 나옵니까?”, “오늘 갔다가 바로 나오려고 합니다.”, “오후 4시에 출발하고 섬에서 머무는 시간은 평도 다녀오는 1시간 정도인데 괜찮겠소. 갈려면 그 시간에 여기로 오면 됩니다.”

일단 소거문도가는 배편 확인하고 민박집을 찾았지만 방이 없단다. 사전 예약하지 않으면 지금은 낚시꾼들이 많아 빈 방이 없다는 것이다.

멀리 제주도에서 왔다고 사정하자 작은 방이 하나 있으니 그 방이라고 좋다면 묵으란다. 하루 묵는 데 작으면 어떤가. 다리 펴고 누울 수만 있으면 되지. 짐 풀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이 섬에 제주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했다는데 혹시 그런 이야기를 알만한 사람 만날 수 없냐”고 했더니 “저기 학교 아래 공터를 옛날부터 고부량터라고 블렀지라. 거기에 제주 사람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합디다. 후에도 손죽도에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살았었는디 지금은 한 사람도 없을 거요. 옛날 우리 할아버지가 제주 사람들 얘기를 많이 해줬어라. 이젠 다 잊었소. 저 고부량터만 기억하지”라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저녁에 듣기로 하고 우선 섬을 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오늘 무척 더우니 시원한 물 가져가라”며 꽁꽁 언 생수를 준다.

선착장 길 따라 걸어가다 돌로 쌓아 만든 둥근 포구가 보이는데 무척 정겹다. 여기가 안성창이란다. 손죽도에는 오래전에 두 개의 선창이 있었단다. 뱃머리성창과 안성창이다. 뱃머리 성창은 지금의 선착장이 건설되면서 매립돼 버렸고, 안성창만 남아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등짐으로 돌을 져다 만들었다는 안성창은 크고 작은 돌을 촘촘히 쌓아 축조해 마을에 상징처럼 보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성창이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옛 제주의 고·양·부씨가 처음 들어와 마을을 이뤄 살았다는 고부량터.
옛 제주의 고·양·부씨가 처음 들어와 마을을 이뤄 살았다는 고부량터.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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