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용설명서
인생 사용설명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8.3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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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영 ㈜숨비 대표이사·논설위원

십여 년 전 한때 ‘무슨 무슨 사용설명서’라는 제목의 책들이 대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이들 책이 다룬 주제는 ‘몸, 감정, 시간, 직장, 군대, 인간관계, 직장상사, 남자친구, 여자친구, 남편, 아내’ 등 다양했으며 그 대상의 공통점은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들이지만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사용법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래서 막상 정확한 사용법을 모르고 있거나 알려지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원래 ‘사용설명서’는 ‘User Manual’, ‘Instruction Manual’ 등 기계, 전자제품, 시스템, 프로그램 등에 제공되는 매뉴얼로 기계나 기기, 소프트웨어 등의 기능이나 사용법 등을 설명한 글이다. 

생각해 보면 앞서 열거한 대상을 명문화할 사용설명서가 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하지만 참신한 제목에 끌려 책을 집어 들게 만든 이 ‘제목 마케팅’은 당시 독자들에게 유효했다. 책 고르는 것에 꽤나 신중했던 필자도 당시 그 유행에 편승해 ‘○○사용설명서’라는 책 한 권을 구입했으니 말이다. 

세상살이가 복잡다단해지고 어려워질수록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단순한 원리나 매뉴얼을 찾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지식정보사회로 급격히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 삶의 양식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왔다. 과거에 비해 모든 것이 풍족하고 편리해졌다고들 하지만 그 반대로 삶이 그만큼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가 최근 복잡계 이론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각광받고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복잡계에 대한 해석이나 관점은 각 학문 분야와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학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공통적인 의견은 ‘현실은 너무 복잡해서 단순한 수학적 공식이나 논리로 환원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혼돈이론에서 ‘초기 조건에의 민감성’을 나타내는 비유로 많이 인용되었던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또한 보잘 것 없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친 대기의 미약한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증폭 과정을 거쳐 거대한 폭풍을 일으킨다는 이론으로 복잡계의 무수한 요소가 상호 간섭과 작용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온갖 묻지마 범죄 사건이나 기상이변, 그리고 갈등과 반목이 첨예한 정치 현상 또한 이 복잡계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벌건 대낮에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구체적인 동기 없이 저질러지는 칼부림이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상이변, 그리고 하나의 사안을 두고도 서로 정반대의 주장과 논리로 극렬하게 대립하는 정치 현상들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 그리고 합리적 판단을 하기에 불가능한 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만연한 이 모든 세상의 혼란과 복잡성 또한 결국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자업자득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어떤 선택이 최선의 것이고 그것이 정답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반성, 그리고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정답이 없는 것 같은 인생에 대한 올바른 사용설명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랜 인류 역사를 통해 본 삶의 진리는 너무나 간단명료하다. 단지 우리가 그 삶의 진리를 우리의 인생 사용설명서로 채택하기에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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