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8.2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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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주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학업중단 예방 프로그램으로 상담 중에 미술에 관심이 있다는 친구들을 데리고 2023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을 찾았다. 

광주에 살면서 비엔날레를 견학하는 건 행운이다.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예약을 하고 상담실에 모인 친구들과 간단한 일정을 나누고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광주는 연일 비 날씨다. 이번 비엔날레 주제에 맞게 학교에서 출발하면서부터 물을 폭우로 만나며 전시관에 도착했다. 아이들의 추억 속에 잊지 못 할 미술관행이다.

제14회 광주 비엔날레 주제는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이다. 전환과 회복의 가능성을 가진 물은 은유이자 원동력, 방법으로 삼고 이를 통해 저항, 공존, 연대와 돌봄의 장소로 상상해 보고 있다.

물의 힘을 표본으로 삼아 이런 힘이 어떻게 분열과 차이를 포용하는지 모색한다. 세상에서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 한다. 이질성과 모순을 수용하는 물의 속성에 주목함으로써 개인과 집단에 깊이 침투할 뿐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복잡한 현실에 나름의 방향성과 대안을 제시하는 예술의 가치를 탐구한다. 

아이들과 입구에서 전체 사진을 찍고 각 전시관에서 자연스럽게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사진 한 컷씩 선생님에게 카톡으로 보내주는 게 오늘의 미션이고 자유롭게 관람 후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2~3명씩 흩어졌다가 나름대로 관람을 즐겼다. 나는 혼자 있는 친구 구경이와 짝이 됐다.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하다 보니 2명씩은 자연스럽게 짝지어 관람한다.

1995년 제1회 광주 비엔날레를 위해 건립된 전시관은 그동안 열세 차례의 전시를 거치며 아시아 최대 현대미술 비엔날레의 중심적인 전시장소로 역할을 하고 있다. 제1회에는 어느 새 훌쩍 커서 일가를 이룬 큰 아들과 함께 동행했다. 아들과 찍은 추억의 사진이 앨범집 한 곳에 있다. 이후 여러 차례 광주에 인연이 있는 친구와 일을 통해 틈틈이 비엔날레를 즐겼다.

이번 전시는 수많은 갈래의 서사가 모이는 합류점으로 작동하며 4개의 소주제를 다루고 있는 마디(nodes)로 연결된다. 은은한 광륜에서는 세계 각지의 민주화 운동을 다룬 작품들과 인종 성차별뿐 아니라 팬데믹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새로운 계층차별 및 의료 불평등에 대한 작품을 다뤘다.

일시적 주권은 후기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의 사상이 디아스포라와 같은 주제를 다루는 예술적 실천을 통해 전개된 방식에 주목한다. 행성의 시간들은 생태와 환경 정의에 대한 행성적 비전을 제시하는 예술적 관전의 기능성과 한계를 살펴본다.

작품들을 보며 이동공간을 지나고 학생들이 찍은 사진들이 ‘카톡’거리며 도착한다.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중간에 체험형으로 작가님들이 페이스페인팅을 해 주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얼굴 찍히는 걸 싫어해서 뒷모습을 찍어 보낸 친구들도 있다. 관람하는 모습이 더없이 진지하다. 페이스페이팅한 그림을 보내 주기도 한다. 모두가 좋다. 내가 체험한 프로그램은 벽에 원을 그리는 체험이었다. 다양한 색상으로 그려진 원이 아름답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니 내가 작품 속 주인공이 돼 본다.

폭우가 내리던 날 우리가 관람을 마쳐 갈 때 잠시 비가 멈췄다. 우리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즐기며 서로의 느낌을 나누며 행복한 하루를 마감한다.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밝은 빛이 돈다. 누가 이 아이들을 학교 부적응이라 말할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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