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의 연쇄반응
파멸의 연쇄반응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8.2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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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울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논설위원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처음과 끝에 같은 장면을 배치했다.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이 만나는 장면이다.

원자폭탄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달리던 오펜하이머는 1947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소장직을 제의받는다. 거기에는 원자폭탄 개발에 거리를 두고 있던 아인슈타인이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연못가에서 산책하고 있던 아인슈타인을 발견하고는 다가가 대화를 나눈다. 헤어지는 말미에 오펜하이머는 이전에 아인슈타인이 자기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파멸의 연쇄반응이 시작되었군.”

이 만남을 영화의 시작과 끝에 배치한 감독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두 물리학 천재의 짧은 대화 속 이 경구는 세 시간짜리 영화를 관통한다. 아니 오펜하이머의 인생을 양분한다. 더 나아가 달라진 세계를 상징한다. 원자폭탄 이전의 세계와 이후의 세계는 차원을 달리한다. 원자폭탄 개발에 몰두했던 오펜하이머와 가공할 위력을 현실에서 확인한 오펜하이머는 다른 오펜하이머가 되었다. 이 세계를 파멸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인류는 이전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파멸의 연쇄반응은 시작되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라는 오펜하이머 전기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문명 진화의 동력인 불을 주었다. 그 대가로 그는 바위 절벽에 매달려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고 있다. 이 형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인간에게 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불을 주었다. 그 대가로 제2차 세계대전은 종식되었지만 핵전쟁의 공포는 지금 우리 세계를 압도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에게 불을 준 이 두 프로메테우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원망해야 할 것인가.

원래 연쇄반응이란 중성자에 의한 핵분열이 계속 반복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가공할만한 힘이 발생한다. 한 번 시작된 핵분열이 또 다른 핵분열을 촉발시키기 때문에 이 과정은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핵분열의 무한 루프에 빠져 있다. 핵에너지라는 미지의 영역을 가능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아인슈타인이고 그 가능성을 현실 세계로 구현한 이가 오펜하이머다. 

아인슈타인이 오펜하이머에게 한 말은 단순한 물리학 개념을 넘어서 있다. 아인슈타인은 단순히 원자 속에서 일어나는 물리 현상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의 말은 세계를 파멸시킬 수 있는 힘을 쥐게 된 인간의 오만과 광기에 닿아 있다. 이후 오펜하이머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관리를 주장하고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기대와 정반대로 진행되었다. 이제 인간의 전쟁은 이 세계 내에서의 전쟁이 아니라 이 세계를 파멸시킬 수 있는 전쟁이 되었다. 한 번 촉발된 이 파멸의 연쇄반응은 이제 멈출 수 없다.

하나에서 촉발된 연쇄반응이 파멸의 연쇄반응이 될 것인가, 공존의 연쇄반응이 될 것인가. 이 과정을 우리 인간이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두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준 불은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아니라 알라딘의 몹쓸램프가 되어 버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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