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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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8.2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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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수 전 성공회대 교수·논설위원

드디어 ‘4월 3일 대사건’의 진실과 정의, 치유를 생각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소설가 현기영 선생의 3부작 장편소설이 세상에 나왔다. 소설가는 늙지 않았음을 증명하고도 남을 너무나 재미있고 아름답고 위대한 문학적 성취이다.

‘제주 대학살사건’이 일어난 뒤 30여 년 뒤에 가서야 가까스로 ‘순이삼촌’(1978)이 나왔다. 박정희 유신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살벌한 시기였다. 북촌리 학살을 처음 폭로한 이 소설가를 전두환·노태우 5공화국 신군부 세력은 그냥 두지 않았다. 작가를 잡아다 흠씬 패주고 기를 꺾고자 했다. 지금다시 읽어봐도 ‘순이삼촌’은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음을 쉬이 알 수 있다.

척박한 땅, 좁은 섬사람들의 삶은 구차하고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연유여서였을까? 1862년에 강제검, 김흥채 등이 주동한 임술(壬戌)농민봉기, 1890년에 김지가 주도한 경인(庚寅)민란, 1896년에 강유석과 송계홍 등이 앞장선 병신(丙申)민란, 1898년에 방성칠이 선도한 무술(戊戌)민란, 1901년에 이재수 등이 주도한 신축민란(천주교란)이 일어났다.

현기영 작가는 구한말 방성칠의 무술민란과 이재수의 난을 그린 장편 ‘변방의 우짖는 새’(1983), 1932년 잠녀항일투쟁을 배경으로 한 장편 ‘바람 타는 섬’(1989)을 써 냈다. 이쯤 되면 그 자신이 역사소설가로 자임해도 될 법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이어 작가는 ‘지상에 숟가락 하나’(1999)라는 성장소설을 통해 제주의 자연과 역사, 사람들을 그려냈다.

보통 ‘4월 3일 대사건’을 좌우 이념대립의 산물로 단정해 버림으로써 극단적 대비극을 합리화하려는 역사 부정세력, 가해자 추종자들이 아직도 남아있어 골칫거리다. 그러나 조금만 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특별법을 살펴보면 ‘4월 3일 대사건’은 1947년 3월 1일 일어난 ‘관덕정학살’로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7년 7개월 동안 일어난 ‘제주섬 주민 집단희생사건’이다. 이 ‘제주대학살’(1947~1954)을 잘 이해하려면 일제강점기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제주사람들의 자주독립 민족해방운동과정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이번 현기영 선생의 장편 소설 ‘제주도우다’는 이처럼 ‘4월 3일 대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기원부터 천착함으로써 좌우 이념대결이라는 구태의연한 접근방식을 뿌리로부터 뒤흔들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민들에게 덧씌워졌던 이념적 색깔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런 누명을 벗기려면 우리 제주사람들이 무엇부터 깨달아야 하는지 일러주고 있다. 그렇다. 그 누가 심한 누명을 씌운들 제주사람들에게는 위대한 항변이 남아 있었으리라.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

가녀린 목숨이 어두운 죽음의 골목과 해맑은 생명의 광장으로 갔다 왔다하는 극단의 순간, 정치적 선택을 강요받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우리의 가야할 방향을 가리는 일은 너무나 위대하고 거룩하고 중요하였다. 옳은 길을 찾아 갈 것인가 아니면 타협하고 항복하고 굴종하고 말 것인가? 모범답안을 찾기 어려운 시절이었고 너무나 위태하고 위험한 공간이었다.

‘4월 3일 대사건’ 발발 76년에 읽어보는 소설 ‘제주도우다’는 한라산으로 입산한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담아냄으로써 ‘제주대학살’의 진실 규명과 올바른 이행기 정의 확립, 피해 유족 및 제주도민들의 치유와 공동체 회복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제 제주도민들이 나서서 ‘4월 3일 대사건’의 보편화, 세계화, 국제화를 위해 영어 등 외국어 번역을 추진해 봄직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등 다른 나라의 독자들도 읽어볼만한 기록문학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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