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할망이 제일 먼저 들어오는 마을…밭 자갈로 쌓아올린 잣담 눈길
영등할망이 제일 먼저 들어오는 마을…밭 자갈로 쌓아올린 잣담 눈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8.2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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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한림읍 귀덕리 영등할망 밭담길
귀덕1리 사무소에서 출발하는 약 4㎞ 코스
‘잣질’ 통해 예전 농부들의 따뜻한 마음 느껴
인도 곳곳서 종자로 사용할 쪽파 뿌리 말려
150년된 보호수부터 크고 작은 팽나무 눈길
밭구석의 잣담.
밭구석의 잣담.

■ ‘영등할망 밭담길’ 이름의 유래

영등할망은 하늘에서 내려와 해상 안전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바람의 신(風神)’이다. 신화(神話)에 따르면 영등할망은 2월 초하루에 제주도로 들어와 바닷가를 돌면서 해산물의 씨앗을 뿌려 풍요를 주고 농사일까지 보살핀 다음 2월 15일에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2월을 ‘영등달’이라 하여 해신당이 있는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영등할망을 맞아 굿을 벌여 대접하고 해녀일과 어로(漁撈)의 안전을 기원한다.

신화에는 영등할망이 2월 초하루 귀덕리 복덕개로 들어와 보름날 우도를 떠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영등굿이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고 난 뒤 귀덕1리에서는 2013년부터 복덕개 서쪽에다 터를 잡아 신화공원을 만들고, 여러 신상(神象)들을 세워 제일 먼저 영등할망이 들어오는 마을임을 긍지로 삼고 있다. 이번에 밭담길이 귀덕1리에 생기게 되면서 그 이름에 ‘영등할망’을 넣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귀덕1리 사무소에서 출발해 ‘잣질’ 동네를 포함한 마을의 주요 밭담길을 돌아오는 코스는 약 4㎞에 1시간이 소요된다.

귀덕향토길 출발점.
귀덕향토길 출발점.

■ 예로부터 ‘잣질’로 알려진 동네

귀덕1리 사무소에서 출발하여 귀덕로를 거쳐 귀덕14길로 들어서면 밭에 자갈이 유난히 많이 섞여 있고, 밭농사를 하면서 나온 돌들을 밭 경계에다 쌓아놓은 것이 보인다. 돌 양이 많고 그리 크지 않다 보니 좀 크게 쌓기도 하는데 이렇게 열악한 지역에 밭을 만들다 보면 안쪽에 있는 밭들은 통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요즘 토지 관련 용어로 맹지(盲地)라 하는 곳들이다.

그런 경우 잣을 가진 밭주인들의 양해 하에 잣 위로 통로를 만들어 활용하는데, 그게 바로 ‘잣질’이다. 좀 넓은 곳은 사람만 출입하는 게 아니라 밭을 갈거나 짐을 싣기 위한 소들도 몰고 다녔다.

지금이야 차량이나 경운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길들이 편하게 나 있지만 그리 농토가 넓지 못 한 당시 마을에서 자신의 밭담 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농부들의 마음은 오늘까지도 따습다.

아직도 남은 쪽파.
아직도 남은 쪽파.

■ 쪽파 산지로 알려진 마을

이곳 마을길을 걷다 보면 인도에 종자로 사용할 쪽파 뿌리를 말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어떤 것들은 너무 말라비틀어지거나 습기가 피어올라 썩기도 하고 발에 밟히기도 하건만 바빠서 그런지 그대로 둔 곳도 있다. 가까운 이웃 마을인 곽지나 금성리에서는 주로 양배추나 브로콜리를 재배하지만 여기선 그런 작물은 물론 쪽파를 비교적 많이 심는다.

이번 답사 중에는 빈 밭이 많았는데 나무그늘에서 마늘 씨앗을 다듬는 아줌마들에게 물어보니, 이제 곧 마늘과 쪽파를 심을 시기가 되었단다. 어쩐 일인지 다른 마을에 비해 감귤과수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전에 가을 농사로는 조를 많이 파종했다는데, 이제는 인건비를 제하고 소득면에서 수지를 맞추기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특별히 조를 파종했다간 주위 새들이 몰려들어 쫓기가 힘들다고 하니 놀랄만한 일이다.

그리고 간혹 쪽파를 수확하지 않고 남겨 놓은 곳이 있는데 이 시기까지 수확을 늦추는 시험을 하는지 아직 싱싱한 것도 있다. 1년 내 쪽파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으니 그런 기술이 개발되면 농가 소득에 크게 기여하리라.

정자나무들.
정자나무들.

■ 향토길을 갖춘 유서 깊은 마을

이번 밭담길은 마을에 들어설 적마다 오래된 팽나무를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다른 마을에서는 귀찮다고 아니면 길을 넓히는데 방해가 된다고 많이 베어버렸다. 그런데 이번 길에서는 150년 된 보호수를 비롯해 크고 작은 팽나무들이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옛날 제주에서는 설촌과 동시에 마을을 지켜줄 정자나무를 심고 당(神堂)을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유서 깊은 마을에 들어서면 정자와 오래된 나무들이 많았다.

이 마을은 고려 희종(熙宗) 7년인 1212년에 이미 귀덕현(歸德縣)으로 편성되었고, 고려 충렬왕 16년인 1300년에 제주에 14현을 둘 때도 그대로 유지되는 등 일찍부터 주민들이 많이 살았다. 그러면서 서로 협력해 외세의 압박을 이겨내면서 마을을 넓혀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후세들에게 알리고자 마련한 ‘귀덕 향토길’은 하동과 중동을 거쳐 성로동, 신흥동, 신서동, 장라동, 장흥동, 사동 등을 걸치는 장장 8.8㎞이 거리다.

돌다 보면 올레 15-A코스가 겹치는 곳이 있어 얼마간 올레길 걷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른 밭에는 벌써 양배추 모종을 심어 물을 뿌리고, 비닐하우스나 길가엔 다 자란 양배추나 부로콜리 모종이 있어 바쁜 시기가 도래했음을 느낀다. 새로 지은 산뜻한 주택도 있고 펜션과 커다란 3층 팜 스테이도 들어섰다. 그래도 급수탱크에 그려놓은 ‘허벅에 물을 붓고 감물 들이는 풍속화’는 아직도 정겹고, 올레에 심어놓은 예쁜 꽃들이 있어 혼자 걷는 길이 외롭지 않았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급수탱크의 그림.
급수탱크의 그림.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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