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까요?”
“바람이 불까요?”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8.2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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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까요?”

주말 걷는 길에 나온 선(禪)문답 같은 질문이다.

“이번엔 쉴 것 같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바람이 분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올 여름 아직까지 오지 않은 태풍(颱風) 이야기가 아니다.

모르면 아무 말도 말고 멀뚱멀뚱하는 게 오히려 백번 나은데. 말 귀를 알아먹지 못하고 5호 태풍 ‘독수리’는 중국으로 갔고, 6호‘카눈’은 통영으로 빠졌다고 하다간 ‘팔불출’이다.

제주시내 전신주엔 바람을 타고 강남갈 제비가 날아왔는데 아직 바람은 불 기미도 없다.

그런데도 제비들이 걱정하지 않는 건 바람은 연가(年暇)도 없단다.

단지 시간표가 바뀌었을 뿐. 캔슬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언제 바람이 불까요?”

▲‘바람의 시간’을 점치는 데 누가 나섰다.

“그 해 가을에도 ‘싹쓸바람’이 와서 섬을 다 쓸어갔지요” 좀 오래됐지만 1959년 추석 전날 ‘사라’가 그랬고, 2003년 9월 12일 ‘매미’도 한여름을 다 보낸 후에 온 지각 바람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인다. “가을 태풍이 무섭지요” ‘싹쓸바람’은 태풍을 일컫는 순우리말이다. ‘싹 쓸어간다’는 어감이 실감나는 말이다.

태풍을 영어로 타이푼(typhoon)으로 부르지만, 어원은 태풍이 아니다. 그리스신화에서 폭풍우를 일으키는 괴물 ‘티폰(Thypon)’에서 왔다고 한다.

싹 쓸어간다는 그 괴물. 그러면 9월에 올까, 10월에 올까. 썩은 4류들을 쓸어간다는 괴담(怪談)이 으스스하다. 올가을 싹쓸바람 예고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으니, 이제 더위는 갔다.

▲삼복(三伏)이 다 지나고 글피가 처서(處暑, 23일)다.

그래도 남은 잔서(殘暑)에 더위도 늠름해 바람이라도 한번 불었으면 좋겠다.

바람이 오는 곳. 제주 올레는 ‘바람의 쉼터’다.

돌담을 따라 구불구불한 이 골목길에는 지친 바람들이 와서 쉰다. 빙빙 소용돌이치며 죽기살기로 회오리춤을 추던 ‘싹쓸바람’도 여기와서는 숨을 내려쉰다고 한다. 샛바람도, 마파람도, 갈바람도 숨어든다. 노대바람, 왕바람 등 세차게 불어 제치던 바람들도 다 여기에 모인다.

그리고 또하나. ‘선거 바람’도 분다.

지금 올레엔 ‘바람’이 속삭이고 있다. “넌 알고있지? 알고 있지?”

▲선거는 ‘바람’이다. ‘여당 바람’이나 ‘야당 바람’이나, 이 4류판에는 불기만 하면 속삭이던 바람이 ‘일진광풍’ 돌풍이 되기도 한다.

내년 봄(총선) 제주에는 바람이 불까. 어떤 깃발이 바람을 탈까. 그래서 사람들은 묻고 또 묻는다.

“과연 바람이 불긴 불까요?”

옛날 중국의 절에서 당간(절의 깃발)이 바람에 움직이는 걸 보고 학승(學僧)들 간에 논쟁이 붙었다. “바람이 움직인다.”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거다.”

이 논쟁을 바라보던 조계대사(曹溪大師) 혜능(慧能: 638~713)이 말했다.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유명한 ‘풍번문답(風幡問答)’이다.

아직 제주에는 바람도 없고, 깃발도 보이지않는다. 사람들의 마음만 흔들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바람은 또 시간표대로 싹쓸어 갈 것이고, 결국 남는 것은 가슴 한쪽의 허전한 마음 뿐일 것 같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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