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아픔 남아 있는 광물 채취 위해 파놓은 십자굴
일제강점기 아픔 남아 있는 광물 채취 위해 파놓은 십자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8.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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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색채 가득한 가사도(加沙島) - 2
일제 강점기때 노승봉 아래 거대한 산을 뚫고 광물을 채취했던 동굴.
일제 강점기때 노승봉 아래 거대한 산을 뚫고 광물을 채취했던 동굴.

# 가위를 닮았다고 가세섬으로 불리우던 섬

가사도는 지금은 조도면에 속하지만 1910년 일제강점기에는 주지도, 양덕도, 광대도, 불도, 장도 등 인근 섬들과 함께 조도면에서 분리된 가사면의 중심이었다. 본섬 가사도와 6개의 유인도와 10여 개의 무인도로 형성된 군도다.

하늘에서 본 섬 모습이 가세(가위)를 닮았다고 하여 ‘가세섬’이라 부르기도 했고 불교적 색채가 가득한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주지도의 주지스님이 양덕도의 화주를 옆자리에 앉히고 예불을 올리기 위해서 버선발로 북쪽 바다를 건너서 신안군 하의도에서 ‘아래옷’을 입고 상의도에 가서 ‘상의’를 입고 장사도에 가서 ‘장삼’을 수하고 다시 가사도에 와서 ‘가사’를 수한 후에 궁항리 목섬에서 ‘목탁’을 잡고 불도를 향해 예불을 올리는 형상이라 전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풍수적으로 지명과 연관시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한국의 섬, 이재언)

이런 전설이 있기 때문인지 제주도 출신 고승 서경보 대종사는 ‘평화통일 기원 일붕시비‘를 1980년 궁항리 마을 입구에 세웠다.

또 가사도는 살생하지 않는 섬으로도 유명하다. 불교에 관한 전설이 내려와 그런지 예전부터 “살생하지 마라. 살생하면 벌을 받는다. 어업은 살생이기 때문에 가사도 사람은 어업을 하면 망한다”라는 속설이 전해오면서 다른 도서의 어촌지역과 달리 어선보유율이 무척 낮다고 한다.

돌목 마을로 가는 해안도로 언덕에 바라본 가덕도, 접우도, 마도, 외공도.
돌목 마을로 가는 해안도로 언덕에 바라본 가덕도, 접우도, 마도, 외공도.

# 장관인 대소동도 해식애를 볼 수 있는 가사등대

노승봉 끝자락 뾰족한 곳에 서 있는 가사등대는 1915년 무인등대로 설치됐으나 부근 많은 섬들과 제주~인천~목포로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위해 1984년 유인등대가 됐다. 다른 섬 등대와 마찬가지로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어 편의 시설과 데크 계단을 설치, 올라서면 대소동도 해식애가 장관이다.

등대를 돌아보고 내려오니 해안을 따라가는 길과 산으로 오르는 두 길이 나온다. 주민이 알려준 전망대 있는 길 따라 작은 언덕을 오르자 바다에 가덕도, 접우도, 마도, 외공도가 거대한 배 모양으로 떠 있다. 얼마 가파르지 않은 길이지만 시간 때문에 서둘러 걸어서 그런지 땀을 흠뻑 흘렸다. 거대한 암벽이 앞을 막고 그 아래 굴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광물 채취를 위해 파논 십자굴이다. 이 굴은 폭 2.5~3.5m, 높이 1.6~2.8m. 동서로 170m 뻗어있다고 한다.

가사도는 섬 전체가 광물이 매장되어 있다. 북쪽에 있는 노승봉은 규석광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주둔하여 진도와 해남 일대에서 젊은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광물을 수탈해 갔다. 남쪽 동굴에선 명반석 광산이, 북쪽 동굴에선 납석 광산이 있었다. 당시 조선민보 1920년에 ‘진도 가사도에 세계 제일 명반석 풍부하게 매장되어 화학 공업가들 주목받다’는 제목아래 “조도면 가사도는 大正 9년(1920), 나고야정도소(名古屋整陶所)의 명의로 광업권을 받아 경질도자기 요도를 채굴하고, 명반석으로 알루미나를 채취하는데 가사도 고령토 광산이 풍부한 명반석 광인 것이 발견되었다. 가사도 명반석은 눈에 보인 노출부만으로도 300만t, 매장을 추산해도 1600만t은 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보도했었다. 광물 채취는 가사도만이 아니라 인근 양덕도, 주지도까지 파헤쳐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등대로 가는 길목 산이 파헤쳐진 곳도 당시 광물채굴을 위해 파헤쳐진 곳을 보수하고 있는데 그 아래 당시 보도된 신문기사를 복사하여 안내판에 붙여놨다.

해식애가 장관인 대소동도.
해식애가 장관인 대소동도.

#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처녀강

이 먼 섬까지 들어와 광물을 수탈했다는 분노를 느끼다 문득 홍도에 갔을 때 숯 공출을 위해 섬에 나무를 무자비하게 훼손했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온몸이 부르르 떨며 지금 우리는 너무 빨리 옛 기억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전망대로 오르다 커다란 암벽 아래 깊은 연못이 있다. 옆에 안내판을 보니 슬픈 전설을 간직한 처녀강이란다. “주지도의 한 청년이 가사도 어여쁜 여인에게 반하여 매일 밤 섬을 헤엄쳐 여자를 만났다. 그러던 중 그 여인은 임신하게 되었고 청년은 그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그 여인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여인은 매일 청년을 그리워하며 노승봉 정상에 올랐고 기다리다가 지쳐 내려오던 도중 연못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청년은 괴로워하며 가사도 십자동굴의 입구를 막고 죄를 뉘우쳤다고 한다. 처녀가 목숨을 끊은 연못은 처녀강이라 부르고 있다고 전해온다.

산 중턱에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가사도 전체는 볼 수 없지만 꽤 넓은 지역을 조망된다. 섬 사이로 어디로 가는 배인지, 천천히 바다를 가르며 지나고 있다. 드론을 높이 띄워보니 가사도는 섬 가운데가 항아리처럼 깊게 형성된 묘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망대 아래 돌목 마을과 해수욕장 ‘큰 모래땅’은 가사도에서 가장 넓은 해수욕장이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애틋한 전설이 전해져오는 처녀강.
애틋한 전설이 전해져오는 처녀강.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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