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잡+몽골어 탈(ТАЛ)을 합해 ‘잡탈’이라한 본지오롬
제주어 잡+몽골어 탈(ТАЛ)을 합해 ‘잡탈’이라한 본지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8.1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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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본지오롬

번영로에서 ‘본지오롬(잡탈)’까지는 정의현성 성읍리 서쪽, 성산읍 삼달리에서는 성읍 방향인 동쪽으로 1136(중산간동로)를 타고 통오롬~독오롬을 지나 ‘잡탈’로 들어가게 된다. 1136번 도로에서는 작은 샛길(시멘트) 농로를 따라가면 V자로 된 잡탈 삼거리가 나온다.

잡탈 삼거리에는 크지 않은 소나무들이 꽤 보인다. 하얀 꽃이 보여서 계요등넝쿨 꽃인가 하여서 가만히 가서 보니 그것은 제주에서는 ‘똥낭’이라고 하는 ‘구리장나무’ 꽃이었다. 구리장나무 꽃은 멀리서 보는 것이지 가까이 가면 구린 냄새를 풍긴다. ‘자연도 사람도 멀리서 보는 게 좋은 경우가 있고, 가까이 가서 보아야 좋은 게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케 한다.

양쪽으로 난 V자 길에서 왼쪽 길로 먼저 걷는다. 작은 트럭이나 경운기 정도가 다닐만한 몇 백m쯤 되는 길이다.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산길이라서 처음부터 장화를 신고 걷는다. 웃자란 황새와 잡초들이 바짓가랑이를 적신다. 요 몇 년 사이에 등산화가 아닌 장화를 신고 산을 오르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산을 오르는데 이렇게 경사가 없는 오롬 길도 처음이다.

본지오롬으로 가는 좁은 산길에는 참식나무·후박나무·사스레피 등의 상록수와 천선과·예덕나무·청미래(망게)덩쿨·산싸리 등이 여름 한 철 우거진 황새·억새 풀 사이에 보인다. 그리고 가끔은 엉성하게 자란 삼나무도 보인다. 얼마쯤 걸으니 오른쪽에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산불초소라는 게 그 오롬에서 제일 높은 곳인데? “그렇다면 여기가 ‘잡탈(본지오롬)’의 정상이란 말인가?” 앞으로 더 나가 보았지만 오롬으로 오르는 경사지는 없었다. 그런데 앞(서)쪽에서부터 자동차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좌(북)로 사라진다. 아래쪽을 내려보니 나무들이 꽉 차서 내려다볼 수 없다. 흐린 하늘에 풍력발전기 날개만이 빙빙 돌아간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아래(남)쪽을 내려다보니 비로소 깊은 경사지가 보이고 그 경사지에는 무덤들이 꽉 들어차 있다. 확 트인 비탈 끝에는 아래편 산길이 보이고, 한 여자가 서쪽을 향하여 걷는 게 보인다. 올라올 때 보았던 한 여자분이 올라와서는 경사지 아래로 내려간다. “어드래 감수꽈?” 물었더니 “요 아래 편 묘지로 감수다”고 답한다.

그러고 보니 두 여자분이 윗길과 아랫길로 나누어 온 것으로 보인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남쪽 아래편에 있는 비탈을 내려다보니 “아 저렇게 비탈이 졌으니(해발 151m) 저 아래서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이곳(비고 32m)이 오롬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롬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롬의 어원과 유래를 밝히는 것이다. “본지오롬에 대해서도 어원과 유래는 어디서 왔을까?” 찾아도 찾지 못 하였다. 그러던 중 김종철씨의 ‘오름 나그네’ 책을 보니 이 오롬을 ‘남산봉에 이웃해 있는데 잡초가 많아서 ‘잡탈’이라고 하였다’는 말이 있었다.

또 하나는 “지금은 없으나 옛날에는 약재로 쓰이는 노박덩굴이라는 식물이 있는데 근육통이나 팔다리 마비 증세에 약재로 쓰이던 ‘본지 풀(노박덩굴)이 많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몽골어에서 그 어원을 찾고, 제주어를 합성할 수 있었다.

몽골어 ‘탈ː’의 발음에는 몇 가지 뜻이 있다. 명사로는 ‘탈바가지=마스크(азгүй тохиол, осол аваар)’ 질병(өвчин)의 뜻(СЭВ:흠·결함·흠집·손상), 감탄사로는 “아!” 불평이나 불만을 표현하는 의성어로 쓰이는 한편, 부사의 ‘탈(ТАЛ)’은 ‘대충·대강·불충분하게·기울어진’이란 뜻으로 한국어 ‘비탈(хазгай, налуу)’이란 말로 몽골에서는 언덕·길 등이 수평을 이루지 않고 기울어진 곳, 즉 경사진 비탈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본지오롬’의 뜻은 몽골어 ‘탈(ТАЛ)’이고 이를 제주어에서는 쓸모없는 ‘잡종지’란 뜻으로 해석하여 ‘제주어/잡+몽골어/탈을 합하여 ‘잡탈(오롬)’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그런데 ‘잡탈’이라고 하는 말에는 ‘오롬’이라고 하는 북방어인 ‘~알(타~알)’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잡탈오롬’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잡탈’이라고 불리는 게 옳다고 보인다.

다시 되돌아서 V자 갈림길로 내려와서 아랫길로 가본다. 아랫길에는 초입부터 쭉쭉 좌우로 늘어선 삼나무들이 울울창창하다. 좌로는 ‘잡탈’ 경사지이고 우측으로는 삼나무 너머로 평탄한 경작지라는 게 특이하다. 오롬이라고 보기에는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는 오롬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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