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춤 혹은 내보임의 우주
감춤 혹은 내보임의 우주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8.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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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시인

한여름 더위가 성산포 앞바다 일출까지 쩔쩔매게 할 만큼 기승을 부린다. 펄펄 끓는 태양을 밥상 삼아 싱싱한 산채냉국 한 사발이 그리워지는 여름이다.

이럴 때 냉국 같은 신선함을 기별로 보내준 산골 동내 시인이 있어 잠시 더위를 잊는다. 그는 한라산 숲 속 길목에 살고 있다. 그의 숲 집에선 온갖 날것들이 은유로 숨을 쉰다. 열기는 뜨겁지만 함부로 흥분하지 않으며 짙게 깔린 녹색의 숲은 함부로 드러내려하지 않는다. 풍길 듯 보일 듯 숨겨지고 감춰진 한 폭의 문인화(文人畵)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숲은 외면보다 내면의 겸손함과 의연함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미려함이 숨겨진 숲의 우주라고 부른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은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은 것은 영원함이라’는 우주론적 가르침을 그는 늘 품고 있어서다.

그런데 여기 숲의 시인을 닮은 또 한 사람이 있다 “관 속엔 성경책 하나만…”이라는 말과 함께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필요한 부지 기증 의사를 밝히신 분이다. 한강변 4000여 평의 부지를 선뜻 내놓으시겠다는 그 분은 95세의 원로 배우 신영균님이다. 

해당 토지의 값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자신이 묻힐 땅과 그 속에 함께 할 성경책 하나 들어갈 여유 공간만 있으면 된다는 진솔함이 우주처럼 들린다. 그 분은 자신의 소유였던 충무로 명보아트홀도 제주도 남원에 있는 신영박물관 등 500억원 규모의 재산마저도 모두 다 사회에 환원한 바 있다. 지난 세월 한국 문화예술계를 주름잡던 그 분, 이름만 들어도 마음 설레던 신영균 신드롬을 우리는 기억한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라는 신앙적 말씀을 기척 없이 몸으로 실천한 분이시다. 

여기서 잠시 또 다른 한 사람의 선행자가 있어서 눈을 떠본다, 지난 7월 20일 어느 언론에 뜬 기사다. ‘조민, 모두를 놀라게 한 근황 “수해이웃돕기 기부”…지지자들 “극찬” 쏟아져’라는 타이틀로 이어지는 기사가 그것이다. 조민 자신이 개설한 SNS에 그가 이웃돕기에 참여 했노라는 사실을 기부영수증 사진과 함께 자랑처럼 밝힘으로써 기사화된 것이다, 그가 띄운 글에는 “매우 큰 금액은 아니지만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어서 모아둔 예금 중 일부를 ‘희망브릿지 전국재해구호협회 2023수해이웃돕기’에 기부했다”는 내용이다. 

조민은 누굴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다. 허위 공문서 작성이란 죄명으로 의사면허가 취소되고 검찰에 기소까지 된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웃돕기 참여 사실을 주저 없이 밝힌다. 우리는 이 일련의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속죄의 뜻일까, 아니면 그래도 나는 당당하다는 소신과 의지의 표시일까. 그도 아니면 “조민님~아름다운 마음씨~진정 큰 그릇이 되실 분이세요~”라는 어느 네티즌이 댓글처럼 큰 그릇이 되기 위해 미래에 뜻을 둔 목적 있는 자선일까.

안타깝다. ‘먼저 사람에게 보이려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하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경구를 그녀가 모를 리 없었을 터이므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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