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교생 눈에 비친 1905년 제주의 이모저모
일본 고교생 눈에 비친 1905년 제주의 이모저모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8.1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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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말(言葉) 국민성(國民性)(硏究社 1939)
‘곤충 말(言葉) 국민성(國民性)’(硏究社 1939) 표지.
‘곤충 말(言葉) 국민성(國民性)’(硏究社 1939) 표지.

한 특정한 분야의 자료를 찾을 때 처음부터 기초 작업을 충실히 해서 해당 자료 목록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경우가 아니라면 예의 자료 찾기 이어달리기가 시작된다. 어찌어찌 괜찮은 자료를 하나 찾아내고 그 책을 뒤적이다 보면 또 다른 자료가 나타나게 되니 꼬리에 꼬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손발이 고생하기 마련이다.

미리 파악하고 있었으면 만난 즉시 필요한 자료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을 바로 옆에 두고도 등잔 밑이 어둡다고 엉뚱한 곳만 뒤지다가 한참 뒤늦게 서야 늦게 만난 것을 아쉬워한다.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게으른 탓에 그 어리석은 짓을 자꾸만 반복한다. 논문이라도 쓸 때야 제일 기본적인 작업이니 확실하게 해야지 한다지만 어떤 친구의 말대로 ‘얄팍한 지식의 조잡한 나열’이나 될까 말까하는 장사치(?)가 된 지금은 그런 의식이 전보다 더 옅어졌기 때문이리라.

제주노린재(Okeanos quelpartensis)와 장흙노린재(Gudea ichikawana) 도판.
제주노린재(Okeanos quelpartensis)와 장흙노린재(Gudea ichikawana) 도판.

그렇다고 그런 이어달리기가 늘 나쁜 결과만 얻는 것은 아니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다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 한 곳에서 의외의 소중한 자료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얼마 전 그렇게 얻어 걸린 귀물(?) 하나를 소개해 보련다.

원래는 홍성목 선생이 번역한 ‘제주도기행(濟州島紀行)’의 대본이 수록됐다는 같은 저자의 ‘나의 박물지(私の博物誌)’(1956)를 수소문하다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기행문이 작성된 시기가 1905년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혹시나 ‘박물지’보다 이른 시기에 출판된 이 책에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만난 게 바로 일본 영어학의 기초를 다진 영어학자로 저명한 이치카와 상키(市河三喜 1886~1970)의 수필집 ‘곤충·말(言葉)·국민성(國民性)’(硏究社 1939)이다.

‘제주도기행(濟州島紀行)’ 부분.
‘제주도기행(濟州島紀行)’ 부분.

14살짜리 중학생 시절 학교 친구들과 일본박물학회를 조직하고 잡지 ‘박물지우(博物之友)’를 간행했던 저자는 1905년 미국인 표본채집가 말콤 앤더슨과 함께 제주도에서 40여 일 간의 채집여행에 참가했고 그 과정을 날짜별로 정리해서 그가 주관했던 잡지 1906년 1월·3월·5월호에 연재했던 기행문이 바로 이 ‘제주도기행’이다. 앤더슨과 제주도 여정을 함께 하며 곤충류와 식물 채집을 진행했던 저자는 장기간의 채집 활동 결과로는 아쉬움이 많았다고 회고했지만 그 가운데 곤충 4종의 신종이 포함됐고 나중에 제주노린재도 추가된 사실과 그가 만든 식물표본이 조선식물 연구에 도움이 됐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비록 채집 여정을 기록한 비교적 단순한 글이지만 동식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저자였던지라 당시의 제주도와 한라산의 동식물에 관한 자세한 기록들은 물론이고, 특히 1901년에 일어났던 신축제주항쟁(辛丑濟州抗爭)을 겪은 지 4년 밖에 안 된 시점에 그가 전해들은 내용이나 마지막 목사(牧使)였던 조종환(趙鍾桓)과의 면담 전후 기록 등은 일본 고교생의 눈에 비친 망해가는 조선의 제주에 관한 이모저모를 살필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치카와 상키(市河三喜 1886~1970) 사진.
이치카와 상키(市河三喜 1886~1970) 사진.

근 120년 전 이미 그들에겐 자신들의 보호국이 된 조선을 ‘개발하고 지도하는 의무는 우리 야마토(大和)민족의 두 어깨에 달렸’고 ‘모든 방면에서 한국 연구에 종사해야’한다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동식물을 세계에 소개하는 것은 과연 누구의 임무일까’ 고민하는 고등학생이 있었다. 며칠 후면 광복절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아이들은 어떤 고민을 하는 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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