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여합니다
오늘도 여여합니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8.0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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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시인

구좌에 터를 잡고 농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조그만 꽃밭과 잔디가 심어진 마당. 그리고 계절마다 제철 채소가 있는 우영팟을 원했습니다. 모든 게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간단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만만한질 않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고 있는 현실입니다. 긴 장마에 엊그제 예초한 잔디는 쑥쑥 자라납니다. 쥐며느리와 지네,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벌레들을 접하면서 공생에 관해 아주 깊게 고민하게 됩니다. 예고편이라도 날리고 나타나면 좋겠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사람을 놀래 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언젠가는 이 또한 무덤덤해지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시골에서 살게 되면 마당에서 차 한 잔하며 별을 같이 바라보자던 남편과의 작은 약속은 자연스레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는 모기를 이결 낼 방법이 없어서입니다. 모기향도 피우고 살충제도 뿌려 보지만 그 모든 게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벌레가 없는 집에 살 수 있는지 물었더니 지인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같이 사는 거 마씸.”
 
문만 빼꼼 열었다 하면 집 안으로 들어오는 파리, 모기가 아직은 낯선 손님이어서 힘들지만 나만의 행복 루틴이 있어 나름대로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이사하면서 거실에서 남쪽을 향해 창을 내었더니 심심하면 당신이 잘 있나 숨은그림찾기를 합니다. 싱크대에서 그릇을 씻는 도중에도 당신의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오늘은 운이 좋아 콩밭을 넘고 당근밭을 지나 돌담을 건너 소나무 몇 그루 너머에 있는 당신을 쉬이 찾았습니다. 다행입니다. 장마가 계속되던 칠월 한 달은 여러 날 당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내내 애태우기도 했습니다.

하루에도 변덕스러운 날씨의 변화에 따라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하는 당신입니다. 숨은그림 찾기 진수를 보여주는 다랑쉬오름, 높은오름, 돝오름을 바라보며 남으로 창을 내길 잘했다고 생각해봅니다. 예전에 읽었던 한 편의 시가 문득 떠오릅니다. 시의 한 구절처럼 저 또한 부지런한 새 소리를 공짜로 듣고 있습니다. 원 없이 공짜로요.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로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의 - 남으로 창을 내겠소 -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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