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계절’
‘개의 계절’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3.08.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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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西歐)에서는 뜨거운 여름이 오면 ‘개의 계절‘이라고 한다. 보신탕 얘기가 아니다. 여름 밤 하늘에 개 모양의 별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개처럼 엉뚱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 개 모양의 별은 ‘큰 개’자리의 알파 별, 시리우스이다. 고대 그리스어로 이글거리며 불탄다는 의미를 갖고있는 시리우스는 개의 눈처럼 시퍼렇게 빛을 발하며 뜨거운 여름을 알린다. 그리스인들이 시리우스가 나타난 무더운 여름철을 ‘개의 날들’(Dog Days)이라고 하고, 서유럽 ‘개의 계절’의 유래이다.

동양에선 이 시리우스를 천랑성(天狼星), 곧 하늘의 늑대 별이라 불렀다. 큰 개나 늑대나 그게 그거다.

▲정말 ‘개의 계절’인가?

엉뚱한 일들이 벌어지고있다.

제주시내에서 길 가다가 이유없이 얻어터지는 ‘묻지마’ 폭행이 여러번 일어나더니, 이제는 흉기를 들고 달려드는 ‘묻지마’ 살인과 살인 예고로 전국이 떨고있다. 길 가다가도 뒷골이 서늘해지는 이 상황. 이게 무슨 납량특집 TV 드라마도 아니다.

정부는 이를 “무고한 시민에 대한 테러”로 규정했다.

대학 커뮤니티들에는 테러 대처방안을 소개한 미국 정부 동영상들이 올라있다.

평소 길을 갈 때는 항상 도망갈 루트를 생각하라고 한다.(Run) 또 도망갈 길이 없으면 근처에 숨을 곳을 찾아 몸을 숨기라고 한다.(Hide)

2023년 여름의 키워드는 ‘Run & Hide’가 됐다. 이글거리며 불타는 더위에, 이성을 잃은 포비아(phobia, 공포증) 거리. 이만하면 연옥(煉獄)이 따로 없다.

▲보통 습도가 오르면 더 덥게 느껴진다. 신체 온도가 오르면 열을 식히기위해 땀을 배출해야 하는 데 습도가 높으니 땀 배출이 안 되고 뜨뜻한 물속에 갇힌 것처럼 체감온도는 더 올라간다.

섭씨 25도를 웃도는 밤이 계속되면 ‘열대야’라고 하는 데 대낮의 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게 한밤의 열기다. 이 한밤의 열기를 이기기 위해선 “열(10)대야의 찬 물을 뒤집어써야 된다”고 하는 우스개에는 그래도 여유가 있다.

요즘은 한밤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초(超)열대야’이니 이마저 소용없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한라산 야행에 나선다. 해발 고도 300m 이상이면 새벽 열대야가 없고, 800m 이상 1100도로에는 저녁 열대야가 없다고 한다. 오후가 돠면 먹을 것 싸들고 산으로 ‘도망’을 갔다가 아침에 돌아오는 풍속도.

‘개의 계절’ 풍경이다.

▲그러나 도망(Run)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도망이란 게 ‘삼십육계’중 엄연한 계(計)다. 계책도 없이 도망하면 우습게 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도망간다는 ‘피서’라는 말 대신 더위속에 숨는다는 의미의 ‘은서(隱暑)’라는 말을 즐겨 썼다. 자연 속에서 은자(隱者)처럼 숨어 지내며 세태인정을 관조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도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의 말이지, 보통 사람들이야 어디가서 숨을 것(Hide)인가.

이 여름은 더위에 쫒기고 사이코패스들로부터 쫒기고. 죽기 살기로 숨바꼭질하는 ‘런 앤 하이드 시즌’이다.

세상이 뒤숭숭해서인지 내일 입추(立秋, 8일)가 든다는 소식이 유난히 의미있게 다가온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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