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게 접하지만 수집은 까다로운 고서 ‘족보’
흔하게 접하지만 수집은 까다로운 고서 ‘족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7.2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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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성주씨족보(綾城朱氏族譜 1849)

1849년 간행, 능성 주씨 집안 족보
목록 1권-본문 8권, 완벽한 ‘한 질’
능성주씨족보(綾城朱氏族譜 1849) 표지.
능성주씨족보(綾城朱氏族譜 1849) 표지.

헌책방에 가면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고서(古書) 가운데 하나가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적어 기록한 책인 족보(族譜)다.

한 가문의 시조나 중시조(中始祖)로부터의 내력을 다 담다 보니 단권(單券)인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는 여러 권이 한 세트로 이뤄진다. 특히 우리나라 삼대성(三大姓)이라는 김·이·박씨의 후손이 많은 본관(本貫)의 경우 수십 권이 한 질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따라서 수집하기 까다로운 분야의 책이기도 하다.

옛날부터 기본적인 신분증명 가운데 하나였던 호적(戶籍)에 본관이 기록되는 우리나라는 어찌 보면 ‘족보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성(姓)이 있고 본관이 있으면 어느 족보엔가는 올라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랬을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조선 초기 성을 가진 이들이 전체 인구의 15% 남짓에 불과했다고 하고 나라에서 6만6000여 명의 공노비(公奴婢)를 없앤 것이 1801년이요, 우리나라 노비제도가 법적으로나마 완전히 폐지된 것이 1894년 갑오개혁 때에 이르러서니 더욱 생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비록 양반이 아닌 양민이나 노비 가운데도 성을 가진 이들이 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이러저러한 까닭에 수록된 내용 가운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가늠하기 어렵고 완질은 거의 없고 대개는 낱권으로 흩어진 책으로 만나게 되는 족보는 헌책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도 선뜻 손이 안 가는 장르의 책이었다.

‘능성주씨족보’에 수록된 송래희(宋來熙)가 쓴 서문.
‘능성주씨족보’에 수록된 송래희(宋來熙)가 쓴 서문.

그렇다고 외면만 한 건 아니다. 때로는 단권이거나 완벽한 한 질로 된 족보에 홀려 일단 지르고 볼 때도 있다. 엊그제도 그런 족보를 한 질 만났다. 오늘은 그 족보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바로 능성주씨족보(綾城朱氏族譜)이다. 본문 전 8권에 목록(目錄) 1책을 포함해서 완벽한 한 질(전 9책)로 송래희(宋來熙)가 쓴 서문이 숭정갑신후사기유(崇禎甲申後四己酉), 마지막 권팔(卷八)의 간기(刊記) 또한 ‘숭정후사기유’인 것으로 봐 1849년에 간행된 족보이다.

이 족보에 따르면 이 집안의 시조는 주자(朱子 朱熹)의 증손인 남송(南宋)의 한림학사 주잠(朱潜)으로 가정(嘉定)년 간에 몽고의 난을 맞아 바다를 건너 고려로 망명했다. 처음에는 금성(錦城)에 거주하다가 나중에는 용담, 완산 등을 거쳐 능성에 은거(隱居)했고 손자인 열(悅)이 능성군에 봉해졌기에 능성이라는 본관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여러 곳으로 이거(移居)하며 그 지명에 따라 본관을 사용하다 보니 주씨는 능성 외에도 나주·웅천·전주 등 여러 개의 분파로 나뉘어 있다가 대한제국기에 경기도관찰사와 중추원찬정 등을 지낸 주석면(朱錫冕)의 상소로 고종의 윤허를 받아 본관을 신안(新安)으로 통일한 것이 1902년이다.

당시의 우국지사인 황현(黃玹)의 기록에 따르면 ‘석면은 북관(北關 함경도) 사람’으로 ‘집안이 보잘 것 없음을 부끄럽게 여겨 주자를 원조(遠祖)로 삼아’ ‘임금에게 힘써 청하여 본관을 신안(新安)으로 바꾸고 모든 주씨들을 합하여 족보를 만드니’ ‘세상 사람들이 천서(賤庶)의 본색을 드러냈다고 욕했다’고 한다(梅泉野錄). 시사하는 바가 많은 기록이다.

학창 시절 ‘너는 언제 때 송씨냐?’ ‘공노비 해방 때? 아니면 갑오개혁 때?’라고 짓궂게 묻던 과 선배들이 생각난다. 팩트는 뭘까? 자못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능성주씨족보’에 수록된 주자(朱熹) 관련 도판.
‘능성주씨족보’에 수록된 주자(朱熹) 관련 도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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