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의 카나리아’
‘탄광의 카나리아’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3.07.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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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걷기 모임. 곶자왈도립공원 탐방로를 가는 길에 한 회원이 이런 말을 꺼냈다.

“혹시 저 같은 분 안 계신가요? 코로나 때가 오히려 좋았던 것 같아요.”

어디를 가도 서로 마스크를 푹 쓰고 있으니까 부담스러운 얼굴들이 안 보여 스트레스도 덜 받았고…. 그런데 코로나가 끝나니 몇 년 간 잊고 있던 만남들이 피곤하고 귀찮다는 것이다. 다들 대답이 없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눈치다.

7월의 영어교육도시 에듀시티로에는 녹음이 짙어져 시커매졌는데, 대형 호텔을 판다는 커다란 현수막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중문단지 내 1급 대형호텔을 판다는 현수막을 지나니 이번엔 섭지코지 입구 대형호텔을 판다는 현수막이 확 다가선다.

누군가 말했다. “코로나 땐 괜찮았다는데 이젠 막 매물로 나오네요”

▲제주는 세계 경기에 매우 민감한 지역이다. 특히 에듀시티는 더욱 그러하다. 코로나에 해외로 못 나가는 유학생들 때문에 인근 지역의 주택매매가가 크게 올랐는데 이제 가격이 빠지고 있다. 53억원까지 매매됐던 타운하우스들도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에듀시티뿐이랴. 코로나가 풀리면서 관광객들이 일본과 중국, 동남아로 발길을 돌리자. 제주섬의 카나리아는 노래를 멈추었다.

과거 19세기 광부들은 새장 속에 카나리아를 넣어 함께 탄광 갱도에 들어갔다. 카나리아는 탄광 안에 조금이라도 유독가스가 퍼지면 노래를 멈추고 광부들에게 위험을 알렸다. 광부들은 즉각 갱도에서 탈출했다. ‘탄광의 카나리아’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다.

▲코로나 속에서도 제주는 좋았다. 관광객들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콧대가 높아진 골프장들이 한데 뭉쳐 노래를 부르고 렌터카는 ‘하드록’ 고음을 질러댔다. 그랬던 제주가 관광객이 떠나면서 호텔도 문을 닫고 기업도 떠나가고 있다.

매물로 나오는 건 호텔만이 아니다. 그 많던 골퍼들이 다 어디 갔나 할 정도로 골프장이 비어있고 렌트카 비용이 40%나 인하됐는데도 손님이 없어 죽을 맛이다.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7월 17일 기준 제주 내국인 관광객 수는 697만9494명으로 지난해 745만176명보다 약 48만명(-6.3%) 줄었다.

관광객들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으니 기업도 사랍도 ‘탈(脫) 제주’ 바람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이런 추세가 가속되면 관광경기 침체로 내수부진에 더해 내년 지역 경제성장이 마이너스로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카나리아는 슬픈 새다. 늘 하늘로 비상을 꿈꾸는 듯 쉬지 않고 노래를 한다. 그런 새가 지금 노래를 하지 않고 있으니 십중팔구 홰에서 떨어진다. 호텔도 골프장도 렌터카도, 카페들도 식당들도 다 그러하다.

코로나 땐 삼척동자 아이들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지원금이란 걸 주었다. 정부도 주고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또 주었다. 손해를 본 상인들에게 손해보상금을 주고 은행대출금 상환도 연기해 주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백수들도 그땐 관공서에서 돈을 받아 가라는 전화를 받으며 당당히 국민의 일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 그래서 코로나 땐 좋았다고들 하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제는 그 돈을 갚아야 할 때다. 꿈에서 깨어나 ‘탄광의 카나리아’가 알리는 이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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