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 연기
아니 땐 굴뚝 연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7.2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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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칼럼니스트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냐?”  
칠순마루,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술벗들이 여론마당이다. 술이 좋아서 벗이 좋은 건지 벗이 좋아 술이 좋은 건지, 어떤 얘기를 안주삼아도 맛이 난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리가 있나?’, ‘연기가 나니 이런 속담이 나왔잖아?’ 술자리는 저절로 두 편으로 갈라지며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된다. 굴뚝 연기는 지피지 않으면 나지 않는다(突不燃不生煙, 돌불연불생연)<洌上方言>. 문제는 지피지 않았는데 연기가 나고 있다고 주장함에 있다. 

필자는 서른 해 교사생활 후, 장학사·교감·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교사생활까지는 ‘아니 땐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음’이 교과서였다. 연기는 지피어야 난다. 자연현상이며 인과(因果)연결이다. 그러나 장학사로 근무하게 되면서 겪은 것은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는 것’이었다. 학교 밖 세상은 말로써(言, 언) 지피어내는 연기가 있다.

말(言, 언)의 머리획(亠, 두)은 사람 머리. 천자문은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하늘·땅에 사람을 등장시킨다. ‘검다(玄, 현)’는 태어나는 애기의 머리색(亠, 두·幺, 요=玄, 현); 하늘·땅의 주인이다. 말(言)이란 두(二) 사람(亠)의 입(口, 구)에서 나오는 것(亠二口=言). 

자연현상은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리가 없지만’, 사회현상은 ‘아니 땐 굴뚝에서도 연기가 난다’. 이러니 연기는 두 종류가 있다. 땔감에서 피어나는 연기와 입에서 지어내는 연기. 굴뚝 밖으로 나오는 땔감 연기는 눈으로 볼 수 있으나 입에서 지어내는 연기는 귀로서 구분된다. 

미국 쇠고기를 먹어서 뇌에 숭숭 구멍이 뚫렸는가? 사드(THAAD) 전자파 지역 참외를 먹고 탈 났는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돈 봉투’를 받았는가? 청담동에서 대통령과 함께 새벽까지 술을 마신 적 있는가? 정치인은 입으로 내뱉고 귀로서 가름한다.

사람들의 귀(耳)가 모여 소곤거림(聶, 섭)이 여론이다(耳耳耳=聶, 섭). 정사(政事)를 좇는(從, 종) 일을 하려면 귀(耳)들이 모여 소곤거림(聶, 섭)을 잘 파악하라(攝職從政, 섭직종정)<천자문78연>.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의 의사 표현에 위해를 받지 않도록 함이지 범죄 혐의자를 조사 대상에서 제외·비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표심(票心) 물방울들이 구름되어 올라가 비를 내려 보낸다(雲騰致雨, 운등치우)<千字文9연>. 이렇듯 여론 바탕은 과학적이다. 거둬들인 벼(禾, 화)를 말(斗, 두)로 측정·계량함에서 비롯되었다(禾, 화·斗, 두=科). 되어보지(斗) 않은 정치적 주장이나 그냥 편 들어 감싸주거나 역성 들어줌은 두둔(斗頓)이지 과학이 아니다. 

진위(眞僞) 가름 않고 마음 맞으면 한패 되고 그렇지 않으면 내치는 짓(黨同伐異, 당동벌이)에서 벗어나라<周邦彦>. 네 잇속 챙김을 스스로 경계하라(戒之在得, 계지재득)<論語 季氏>. 정치인은 철면피라지만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느껴라(顔厚有忸怩, 안후유육니)<五子之歌>. 
 
잇속 챙기려 바둥바둥 입으로 내(연기) 피우지 마라.
세상 귀모임들 소곤거리며(聶, 섭) 다 골라 뽑아낸다.    
‘그럴듯하나 실제 그렇지 않음(plausibility)’를 안다. 
네 마음 속 도둑질부터 두들겨 없애라(破心中賊難)<王陽明>.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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