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기인의 자전적 비평문집”
“미술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기인의 자전적 비평문집”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7.1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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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그린 그림(문예한국사 1992)

화가·미술평론가 김원민 선생 저서
제주지역 미술에 대한 평론 모음집
‘글로 그린 그림’(문예한국사 1992) 표지.
‘글로 그린 그림’(문예한국사 1992) 표지.

헌책방을 하다 보면 인연이 겹치는 묘한(?) 날이 가끔씩 있다. 우연히 이런저런 인연들이 한 날 한꺼번에 조우하는 것이다. 엊그제도 그런 날이었다. 그 날 전후로 겪었던 사연은 이렇다.

전에 소개해 드린 바와 같이 몇 해 전 고(故) 문충성 시인의 장서 등 관련 자료를 입수한 적이 있다. 그 때 함께 입수된 자료 중에는 시인의 시 ‘해바라기’를 시화(詩畫) 작품으로 만든 그림이 한 점 포함돼 있었다. 얼마 전 한 기관에서 그 작품(물론 다른 자료들도 포함해서)에 대해 관심을 보인 까닭에 제안서를 넣고 평가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 주에 그 결과가 나왔는데 자못 충격적이었다.

그 평가 내용을 듣고 바로 드는 생각이 아무리 속한 장르가 문학(시)과 미술(그림)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담배 한 보루’(정확히는 ‘열한 갑’남짓)가 의미하는 게 뭘까 싶었다. 넓게는 ‘예술’이라는 큰 틀 안에 함께 하는 이들이 다른 이의 분야를 이렇게 ‘백안시’(白眼視)해도 되는 건가 하는 마음에 이건 아니다 싶어서 바로 제안을 철회했다. 그 작품을 회수해 온 날이 바로 엊그제였다.

그 날 자료들을 차에 싣고 나서 막 출발하려는데 아는 분으로부터 좋은 책들이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만난 게 그 그림의 두 주인공인 시인과 화가의 친필 서명본 책들이었다. 몇 해 전 처음 접했을 때 어느 분의 작품일까 무척 궁금했었기에 그 날 차에 그 그림과 두 분의 저서를 함께 싣고 서점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시인의 저서는 이미 소개한 바 있으니 오늘은 그린 이의 책을 소개해 보련다.

‘글로 그린 그림’에 수록된 김원민 화백의 작품-섬 이야기.
‘글로 그린 그림’에 수록된 김원민 화백의 작품-섬 이야기.

바로 화가이자 미술평론가 김원민(金元玟 1943~ ) 선생의 ‘글로 그린 그림’(문예한국사 1992)이다. 책의 부제인 ‘제주미술의 현주소’가 설명하듯 제주 미술에 대한 평론을 모은 평론집으로 머릿글을 쓴 김남수 미술평론가로부터 ‘가난하지만 시류의 편승이나 타협을 싫어하는 외곬이 인생의 고독을 스스로 즐기며 살아 온 인간’이자 ‘미술을 떠나서는 단 하루도 살아 갈 수 없는 기인(奇人)’의 ‘자전적(自傳的) 비평문집(批評文集)’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책이다.

‘그림으로 성공(?)할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에게 ‘글로 그리는 그림’을 가르쳐 주겠다는 미술대학 당시 은사였던 이경성 선생의 말씀을 계기로 1970년대 초반부터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과 글로 그리는 그림을 병행했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미술비평이 없는 제주지역 미술계에 하나의 활력소 역할’을 기대하면서도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가진 ‘직업에서 얻어진 부스러기’라고 자평(自評)하고 있다.

또 ‘남이 알아주는 작업도 아니었고 남들처럼 화려한 각광을 받는 작가’도 아닌 ‘내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남들이 ‘내 그림을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선생은 홀로 가는 인생길이 너무 황량하고 고독하지만 ‘그림이란 친구’가 있어서 ‘결코 외롭지 않다’고 고백하고 있다.

내 ‘작품 값이 호당 얼마요’라는 말은 본인과는 ‘관계없는 저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초연했던 선생이 ‘그린다는 자체가 즐거움’이요 ‘살아 숨 쉰다는 증명’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여전히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앞으로도 부디 강건하셔서 그 즐거움을 오랫동안 만끽하시길 바라는 바이다.

‘글로 그린 그림’에 수록된 김원민 화백의 작품-풍경.
‘글로 그린 그림’에 수록된 김원민 화백의 작품-풍경.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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