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롱베이의 원숭이
할롱베이의 원숭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7.1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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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2000여 개의 섬들이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간직한 곳, ‘신들의 정원’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베트남의 북부에 있는 할롱만이다. 지질학적,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이미 세계자연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꼭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제주 펜 문학과 베트남 문인들이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기념 문학 교류 행사’를 갖게 되어 하노이를 방문하게 되었다. 

베트남 문인들과 공동으로 출판기념식을 하고 문학작품을 낭송하며 문학을 공유하였다. 과거 베트남과 한국과의 관계를 뛰어넘어 희망의 양국관계를 소망하며 문우로서 우애를 나누는 자리였다. 행사 후 베트남 작가들이 저녁 대접을 융숭하게 해 주어서 사뭇 감사한 마음이 컸다. 뜻깊은 문학 교류 행사에 못지않게 할롱베이의 비경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할롱베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라는 뜻을 지닌 말이라고 한다. 날씨가 좋아 비경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유람선이 서서히 섬들 사이로 들어갈수록 무릉도원이다. 바다는 호수로 착각할 만큼 잔잔하고 반짝거렸다. 초록 망토를 걸치고 제각각 다른 자태로 유유히 떠 서 지나는 이들을 반겼다. 마치 바다 위의 숲에 온 듯했다. 섬들의 모양이 중국의 계림(桂林), 운남성 곤명의 석림(石林)을 떠올리게 했다. 알고 보니 이들은 모두 고생대 때 만들어졌다고 하니 장소는 다르나 같은 핏줄인 셈이다. 

할롱베이에 얽힌 전설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오래전 외세의 침략이 있었는데, 외세를 물리치려고 용이 내려와 수많은 여의주를 토해냈단다. 용이 토해낸 여의주들은 바다에 닿자마자 섬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각각의 섬에는 용의 영들이 깃들어 있을 수도 있다. 언젠가 다시 용이 되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할롱베이의 호수정원이라고 불리는 항루원에는 원숭이들이 있다. 나룻배로 갈아타고 노를 저어 낮은 터널을 지나 항루원에 다다랐다. 사방이 암벽으로 둘러싸여서 커다란 호수에 와 있다는 착각을 하게 했다. 주위의 비경에 감탄할 즈음에 나룻배는 서서히 원숭이들이 있는 곳으로 노를 저어 갔다. 

원숭이들은 조금이라도 나룻배와 가까운 바위를 찾아 ‘한 푼 줍쇼’ 하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거린다. 바나나를 던져주니 몸집이 큰 놈이 먼저 잽싸게 받아먹는다. 큰 놈 옆에서 눈치 보던 작은 새끼를 향하여 비스킷을 던졌는데, 이번에도 다른 놈이 날쌔게 잡아챈다. 갈고닦은 실력 발휘 앞에 아직 어린 원숭이들은 뛰어봐도 별수 없다. 아직 먹을 것을 받지 못 한 원숭이들은 자기에게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다. 못 받은 놈에게 자선을 베푸는 마음으로 조그맣고 순하게 생긴 놈을 향해 ‘받아라’ 하면서 비스킷을 던졌다. 생각지도 않은 다른 원숭이가 나뭇가지 위에서 뛰어내리며 낚아챘다. 비스킷을 받아든 원숭이가 ‘세상은 네 맘대로 되는 게 아니야.’라며 비웃는 것 같았다. 

그날 먹을 것을 하나도 받지 못 한 원숭이들은 더 부지런히 나뭇가지나 열매들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은 공평하지 않아’라고 투덜거렸을 수도 있다. 

이곳 항루원의 섬에 원숭이가 있어서 다행이다. 원숭이는 잡식성이기 때문에 열매를 먹고 씨앗을 퍼트리고 나뭇가지를 부러트려 낮은 곳까지 햇빛이 닿게 하는 숲의 정원사이기 때문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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