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노릇, 어렵지요?
부모 노릇, 어렵지요?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7.1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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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가 안 된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자녀를 둔 부모들이 그렇다.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자녀와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 것인가. 

사람들은 흔히 ‘소통’과 ‘대화’를 동의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화는 소통의 한 방법일 뿐이다. 그래서 이 둘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대화를 거부하니 소통이 될 리가 있나”의 경우처럼 대화는 소통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소통(疏通)은 ‘막힌 것을 뚫는다’라는 뜻이다.

소통이 잘 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다 보면 감정적으로 부딪치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서먹해지고 만다.

이렇게 역지사지하기 위해서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차이가 있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살아온 시대와 오늘날은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불통은 시작한다.

오랫동안 학교에 근무하면서 학생들과 상담하다 보면 정말 ‘어이상실’인 경우가 많다. 학생이 잘못해서 부모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 학생들의 생각을 물어본 일이 있다. 부모 앞에서 입 다물고 야단맞을 때 자녀는 과연 부모의 꾸지람을 ‘새겨들을까?’

한 학생은 말한다. “저는요, 우리 집 거실의 무늬를 극사실화로 그릴 수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일까. 부모님 앞에 꿇어앉아 잔소리를 듣는 동안 잔소리는 듣지 않고 바닥의 무늬만 관찰했다는 얘기다. 아예 귀를 닫고 있었다는 얘기다.

다른 학생은 또 이렇게 말한다. “저는요, 마음 속으로 애국가를 불러요.” 그러기에 되물었다. “잔소리가 길어지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러자 “천천히 4절까지 반복해서 부르면 돼요.” 그야말로 말문이 막히고 어이가 없는 대답들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못하면 잔소리하고 야단을 쳐서 행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고 도리라고. 자녀의 잘못을 묵인하는 것은 부모의 역할을 방기(放棄)하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따끔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위 학생들의 얘기를 듣고도 야단을 치실 텐가. 부모님 앞에 앉아 거실 바닥의 무늬만 집요하게 관찰하는 아이에게, 마음 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아이에게 잔소리하고 야단을 칠 생각이 드시는가.

그러면 어쩌라는 말이냐고 반문하실 것이다. 부모가 부모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점점 더 부모가 현명해져야 하는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 아이들이 한 언행의 원인을 제대로 알고 왜 그러한 말과 행동을 한 것인지 이성적, 논리적으로 새겨보고 아이의 처지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저 부모들 자신이 자라올 때의 부모처럼 무작정 소리 지르고 야단치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특히 야단을 치거나 잔소리할 때는 가슴으로 쏟아내서는 안 된다. 애정 표현이나 칭찬은 가슴으로, 훈육은 머리로 하자. 가슴으로 뱉어낸 말은 가시가 들어 있게 마련이어서 감정을 섞은 잔소리가 자녀의 귀에 들릴 리 없다는 말이다.

칼에 베인 상처는 쉽게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덧나거나 치유가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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