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빌레에서 만난 아버지
파파빌레에서 만난 아버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7.04 1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순진 시인

독서회에서 함께 활동하는 선생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요양원에서 지내시는 고충은 대충 들었지만 뜻밖의 부고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문학기행 중에 받은 부고라 함께 갔던 절친인 한 회원은 여행도 도중에 포기하고 새벽 첫비행기로 돌아와 슬픔을 함께 했다. 그 우정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기력을 잃어가고 말문도 열 줄 모른다. 겨우 입을 열어도 열망이 없는 목소리다. 고심 끝에 바람 쐬러 가자고 꼬드겼다.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 봄바람을 맞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정한 곳이 ‘파파빌레’다. 상효원이나 한림공원으로 가서 봄꽃들을 볼까 했지만 너무 화려한 모습은 상처난 가슴에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파빌레는 아버지의 돌밭이라는 뜻인데 아버지의 기억을 다 묻어버리기보다는 충분히 기억하고 충분히 슬퍼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얼마 전에 독서회에서 이야기 나눈 책도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그날도 독서회 모든 회원의 숨겨졌던 아버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눈물과 슬픔도 함께 쏟아져 나왔다.

나도 아버지를 떠올렸다. 작은 마을의 땅부자였지만 매일 술만 드시는 한량이었던 아버지를. 막내딸 사랑만은 지극했던 딸바보 아버지를. 힘든 농삿일은 어머니가 도맡아 했으니 나는 원망만 하고 살았다. 삼남 오녀 중 막내라서 아버지는 무척 아끼셨지만 그 사랑을 눈치채면서도 어머니 고생 시키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마음 속으로 화해를 했다. 나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애지중지 하던 쇠막의 소를 팔았다는 기억이 내 마음을 덮쳤다. 시인이 된 나는 정거장에 전시할 시로 ‘아버지의 소’를 응모했고 당선되어 지금 한국병원 정거장에 걸려있다. 지금 나에게 아버지는 유일한 나의 태양이시며 지지 않는 불꽃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버지를 꼭 껴안아드리고 싶다.

파파빌레는 환상숲처럼 무작정 파고 파다가 곶자왈 길이 된 것처럼 돌밭을 우연히 파고 파다 보니 보물이 나온 격이다. 한반도 모양의 바위가 숨겨져 있고 기이한 형상의 현무암들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연구가들이 모여들어 돌 연구를 하고 많은 작가들이 모여 스토리텔링을 만들었다. 지금은 제주의 꽤 유명한 치유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한 바퀴 돌다가 ‘파파상’ 앞에서 멈추었다. 마치 생전에 아버지가 웃는 모습이었다. 마음 속엔 아버지에 대한 미움보다 그리움이 넘실거렸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버지를 이해해드리지 못한 막내딸, 꾸짖어 주세요.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일요일이라 손님은 우리 셋 뿐이었다. 구석 구석 사진을 찍고 커피숍으로 들어와 내가 가져간 천혜향과 차를 마시며 담화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에 차창으로 보이는 노을이 유독 붉었다. 삶에 지친 세 여자의 마음을 토닥여주는 친절한 치유사처럼.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