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일본인 눈에 비친 제주…“개척보다 배양을”
근대 일본인 눈에 비친 제주…“개척보다 배양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6.29 1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구잡기(靑丘雜記 1932)

일제강점기 아베 요시시게의 조선 견문기
1920년대 말 제주의 이모저모도 담겨 주목
조선산 삼베로 싼 청구잡기(靑丘雜記 1932) 표지
조선산 삼베로 싼 청구잡기(靑丘雜記 1932) 표지.

외국 서적들을 탐색하다 보면 종종 서명과 전혀 관계없는 데서 우리에게 필요한 유용한 자료를 찾기도 하지만 어떤 책들은 첫 눈에 바로 이거야 싶은 놈들도 있다. 

그럴 경우 책이름 자체가 직관적인 것도 있고 글꼴이나 장정이 바로 ‘우리 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쩌다 두 가지 다 해당될 경우엔 일단 손에 꼭 쥐고 본다. 아차 하는 순간에 다른 이에게 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내 손에 쥐었던 귀물(?)을 눈앞에서 남에게 빼앗기고 나면 얼마나 속이 쓰린 지 안 당해 본 이들은 모르리라.

그렇기에 그런 아린 경험이 있었던 책들을 어쩌다 다시 만나면 우선 매입하고 본다. 아니 마치 굶주린 이가 식탐을 부리듯 사고 또 사고 일단 지르고 본다.

그러다 보면 같은 책이라도 매입가가 모두 다르다. 처음에는 좀 고가여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나중에 좀 저렴한 책을 만나면 저렴하니까, 그러다 아주 저렴한 책은 이렇게 쌀 수가 하며 사들인다. 그런 책들은 그만큼 우리와 관련이 깊기에 책방 장서 리스트에 중복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오늘은 그런 안팎으로 ‘우리 꺼’라는 냄새를 풀풀 풍기는 책을 한 권 소개해 보련다.

바로 경성제대 교수와 일본 문부대신 등을 지낸 아베 요시시게(安倍能成 1883~1966)의 저서 ‘청구잡기’(靑丘雜記 1932)이다.

‘청구잡기’에 수록된 ‘제주도 해녀’ 사진.
‘청구잡기’에 수록된 ‘제주도 해녀’ 사진.

도쿄제대를 졸업하고 유럽 유학을 거쳐 1926년 경성제대 철학과에 부임했던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에 도움을 주었던 일본인으로 추앙받는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나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으로 불린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와 같은 조선에 조예가 깊은 인물들과 교류했다.

이를 통해 그가 조선의 자연과 문화, 풍속 등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오사카아사히(大阪朝日)신문에 기고했던 글 등을 모아 출판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1926년부터 1932년까지 6년 동안 ‘때때로 마음가는대로 쓴 글’들 전부가 조선에서 쓴 것이라 서명을 이렇게 명명했다고 밝힌 저자는 표지를 싼 천도 조선산 삼베(麻布)로 하고 속지는 한지(韓紙)를 썼으며 그 그림은 조선 도자기에 관한 연구자이자 감상자로 유명했던 아사카와 노리다카(淺川伯敎 다쿠미의 형)가 그린 것으로 장정했다.

뿐만 아니라 책등의 서명과 저자명은 ‘조선왕조실록’의 글자체를 뽑아서 쓸 정도였기에 보는 순간 그의 조선에 대한 관심이 한 눈에 느껴지는 책일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저자가 1920년대 말에 우리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기록한 여행기 ‘탐라만필’(耽羅漫筆)과 ‘제주도 해녀’ 사진이 수록되어 더욱 주목되는 바이다.

그 글에서 그는 물질하는 해녀들, 바람을 피하기 위해 쌓은 현무암 돌담 등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調和)를 느꼈다고 고백하고 물허벅과 구덕, 제주의 무속신앙 등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또 제주도 제일의 명물로 해녀를 들고 그녀들의 숨비소리에 주목했던 그는  당시 13척이 있다는 잠수기선의 잠수부들과의 생존경쟁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당시 제주의 이모저모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도 당국자들은 제주를 ‘미개(未開)의 보고(寶庫)’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개척(開拓)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배양(培養)하는 게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는 마지막 구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게 아닐까 싶다.

‘청구잡기’에 수록된 ‘탐라만필’(耽羅漫筆) 끝 부분.
‘청구잡기’에 수록된 ‘탐라만필’(耽羅漫筆) 끝 부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