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아베 요시시게의 조선 견문기
1920년대 말 제주의 이모저모도 담겨 주목
외국 서적들을 탐색하다 보면 종종 서명과 전혀 관계없는 데서 우리에게 필요한 유용한 자료를 찾기도 하지만 어떤 책들은 첫 눈에 바로 이거야 싶은 놈들도 있다.
그럴 경우 책이름 자체가 직관적인 것도 있고 글꼴이나 장정이 바로 ‘우리 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쩌다 두 가지 다 해당될 경우엔 일단 손에 꼭 쥐고 본다. 아차 하는 순간에 다른 이에게 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내 손에 쥐었던 귀물(?)을 눈앞에서 남에게 빼앗기고 나면 얼마나 속이 쓰린 지 안 당해 본 이들은 모르리라.
그렇기에 그런 아린 경험이 있었던 책들을 어쩌다 다시 만나면 우선 매입하고 본다. 아니 마치 굶주린 이가 식탐을 부리듯 사고 또 사고 일단 지르고 본다.
그러다 보면 같은 책이라도 매입가가 모두 다르다. 처음에는 좀 고가여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나중에 좀 저렴한 책을 만나면 저렴하니까, 그러다 아주 저렴한 책은 이렇게 쌀 수가 하며 사들인다. 그런 책들은 그만큼 우리와 관련이 깊기에 책방 장서 리스트에 중복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오늘은 그런 안팎으로 ‘우리 꺼’라는 냄새를 풀풀 풍기는 책을 한 권 소개해 보련다.
바로 경성제대 교수와 일본 문부대신 등을 지낸 아베 요시시게(安倍能成 1883~1966)의 저서 ‘청구잡기’(靑丘雜記 1932)이다.
도쿄제대를 졸업하고 유럽 유학을 거쳐 1926년 경성제대 철학과에 부임했던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에 도움을 주었던 일본인으로 추앙받는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나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으로 불린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와 같은 조선에 조예가 깊은 인물들과 교류했다.
이를 통해 그가 조선의 자연과 문화, 풍속 등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오사카아사히(大阪朝日)신문에 기고했던 글 등을 모아 출판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1926년부터 1932년까지 6년 동안 ‘때때로 마음가는대로 쓴 글’들 전부가 조선에서 쓴 것이라 서명을 이렇게 명명했다고 밝힌 저자는 표지를 싼 천도 조선산 삼베(麻布)로 하고 속지는 한지(韓紙)를 썼으며 그 그림은 조선 도자기에 관한 연구자이자 감상자로 유명했던 아사카와 노리다카(淺川伯敎 다쿠미의 형)가 그린 것으로 장정했다.
뿐만 아니라 책등의 서명과 저자명은 ‘조선왕조실록’의 글자체를 뽑아서 쓸 정도였기에 보는 순간 그의 조선에 대한 관심이 한 눈에 느껴지는 책일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저자가 1920년대 말에 우리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기록한 여행기 ‘탐라만필’(耽羅漫筆)과 ‘제주도 해녀’ 사진이 수록되어 더욱 주목되는 바이다.
그 글에서 그는 물질하는 해녀들, 바람을 피하기 위해 쌓은 현무암 돌담 등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調和)를 느꼈다고 고백하고 물허벅과 구덕, 제주의 무속신앙 등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또 제주도 제일의 명물로 해녀를 들고 그녀들의 숨비소리에 주목했던 그는 당시 13척이 있다는 잠수기선의 잠수부들과의 생존경쟁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당시 제주의 이모저모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도 당국자들은 제주를 ‘미개(未開)의 보고(寶庫)’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개척(開拓)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배양(培養)하는 게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는 마지막 구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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