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거수 마당에서
노거수 마당에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6.27 18: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은자 수필가

낙안 읍성에 도착했다. 작열하는 태양은 벌써 윗도리 겉옷을 벗기고 양산을 펼치게 했다. 몇 번이고 와본 곳이지만 새로운 느낌이다. 눈에 들어오는 식물들은 대부분 노거수이다. 은행나무도 보인다. 눈에 익숙한 팽나무도 있다. 느티나무 아래 앉아서 어른들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여유로워 보인다. 

한참 동안 관찰하던 끝에 알아낸 은목서, 군데군데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나무였다. 어찌나 싱그럽던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읍성 안을 덮고 있는 푸르름은 노거수의 자존심이었다. 예전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싱그러움이 보이는 것은 아마도 내 걸음이 느려진 이유도 있겠다. 육백 년 넘는 성안의 터줏대감들을 처음 만난 듯 눈맞춤 한다. 어디쯤엔가 석류나무가 있었는데, 붉은 석류알을 씹고 신맛에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여러 해 지나 다시 와보니 보니 새로운 느낌이다. 

읍성 안엔 몇 명의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공놀이하고 있다. 체험학습을 하러 온 모양이다. 떠들며 즐기는 모습에서 옛날 아이들의 노는 장면을 상상하여 본다. 전통 한복을 입고 짚신을 신은 차림으로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했으리라. 운동화를 신는 지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말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던 과거에는 여자아이들은 길쌈놀이를 했을 테고, 남자아이들은 씨름하거나 전쟁놀이하며 뛰어다녔으리라. 입시 위주의 공부 때문에 노는 법을 잊은 요즘 아이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게 고작이다. 

동적인 놀이보다 정적인 놀이가 현대인의 시간을 점하고 있다. 과연 바람직한 현상일까. 아이들 못지않게 어른들에게도 놀이가 필요하다. 놀이하는 가운데 몸을 움직이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움직임이 느려진 노인을 위한 전래놀이를 지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래놀이야말로 추억을 살려내는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육체나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치매 예방을 위해서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래놀이 몇 가지만 익혀도 활동하는 수단으로 유용할 듯하다. 

걸음을 옮기는 동작들이 더디다. 올라왔으니 내려가야 하는 위치에 다다르자 내려가기가 거북해지는지 너도나도 조심스럽게 천천히 계단을 내려섰다. 올라간만큼 내려와야 한다는 말은 진리였다. 무엇을 보고 어떤 사색을 하며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걸음 옮기는 데 집중한 듯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