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꽃
해바라기 꽃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6.2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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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파종한 해바라기가 6월 들어 십여 그루 꽃을 피웠다. 아침마다 활짝 고개를 들어 나를 반긴다. 지난해 심은 꽃의 씨앗을 받아 두었다가 올 봄에 다시 심은 것들이다. 사람으로 말하면 ‘아들 꽃’인 셈이다.

해바라기는 여러 그루 무리를 이루어 피어 있을 때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해바라기’(Sunflower)에서 처럼 굉장한 장관은 아니지만, 요즘 나는 그 흉내라도 내어보고 있다. 해바라기를 자세히 보면 볼수록 ‘태양의 꽃’ 또는 ‘황금 꽃’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다른 꽃들도 그렇긴 마찬가지지만 유독 해바라기는 햇빛을 좋아한다.

고추대 옆의 해바라기는 햇빛을 충분히 받아 건실하게 컸지만, 벽면을 등지고 그늘에 선 해바라기는 키도 작고 꽃도 크지 않다.

▲영화 ‘해바라기’는 1970년대 영화다. 주 무대는 지금 한창 전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무솔리니 군대에 징집돼 전쟁터로 나간 남편이 “우크라이나 돈강 근처에서 낙오됐다”는 말을 듣고 여주인공 조바나(소피아 로렌)는 기차를 타고 남편을 찾아 나선다.

남편의 흔적을 좇는 조바나의 눈앞에 해바라기 평원이 아득히 펼쳐진다. 지평선이 안 보일 정도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샛노란 해바라기들이 영화 주제곡 ‘사랑의 상실(loss of love)’의 선율에 따라 흔들리는 장면은 정말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아주 오래전 본 영화인데도 그 장면 하나하나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남녀 간의 사랑을 소재로 했지만 전쟁의 비극, 전쟁의 아픈 상흔을 깊히 다루고있다.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라고 한다.

전쟁을 하는 명분도 다양하다. 전쟁을 주도하는 권력자들은 전쟁의 명분이 없으면 조작했고, 작다면 크게 만들었다.

전장에서의 죽음은 조국과 신의 대의명분을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됐다. 모두가 ‘정의로운 전쟁’뿐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거짓말’일 뿐이다. 이런 점은 국가간 전쟁뿐 아니다.

국내 정파(政派)간의 전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알고 있다. 여야(與野) 권력자들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감내해야 할 고통은 일반 국민의 몫이라는 것을. 정치인의 전쟁엔 승패가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전쟁엔 승자가 없다. 고통만 있을 뿐이다.

▲며칠전 유튜브 동영상을 보니 우크라이나 할머니들이 러시아 군인들을 향해 호통을 치고 있었다.

“러시아 군인들, 네 주머니에 해바라기 씨나 넣어두라. 네가 이 땅에서 쓰러져 누우면 해바라기들이 자랄 테니까” 흡사 저주와 같은 목소리가 섬뜩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마음이 이해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이제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빨리 종식되었으면 하고, 우리 정치의 4류 ‘괴담’ 전쟁도 그만하고 국민을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모든 꽃이 다 그렇듯이 해바라기도 꽃을 피울 때 이미 질 것을 알고 있다.

생멸(生滅)의 미학이랄까.

꽃이 져야 비로소 그 자리에 열매가 생긴다. 한 번뿐인 우리 삶도 그렇고, 세상사 원리도 이와 같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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