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만 뜯어고친다고 되나
수능만 뜯어고친다고 되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6.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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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발(發) ‘수능’ 발언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대변인실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공교육에서 다루는 내용에 관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더 보충하기 위해 사교육을 찾는 것은 막기 어렵다”라며 “그러나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이 부총리는 이날 대통령실이 발표에 앞서 이뤄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라며 “수능 변별력은 갖추되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라”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수능 출제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교육계는 당장 올해 수능 난이도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고 나섰으며 이 발언이 전해지자 여러 가지 우려가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실은 약 3시간 만에 공지를 내고 해당 발언을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분야의 출제 배제’로 정정했다.

대통령실의 정정에도 이후 1주일 동안 수험생과 학부모 사이에선 15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올해 수능의 난이도와 출제 경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정치권에서는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수능 난이도를 놓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고 전년도 수능 난이도에 따라 해당 연도 수험생들은 많은 혼란을 겪은 건 주지의 사실이다. 공교육 교육과정 밖에서 수능이 출제되면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므로 이는 공정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은 수능이 도입된 이후 끊임없이 제기됐고 이를 지키는 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공정한 수능’ 언급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가열됐다. 

논란이 이어지자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19일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 협의회’를 열어 수능에서 이른 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출제를 배제하고 수능의 적정 난이도 확보를 위해 출제 기법 등 시스템을 점검하기로 했다.

당정은 ‘킬러 문항’이 시험 변별력을 높이는 쉬운 방법이지만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공정 수능’을 위해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출제를 배제하기로 했다. 

당정의 이런 결정에 대해 현장에서는 ‘물수능’과 ‘불수능’을 예상하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당국은 올해 시험을 볼 수험생과 학부모의 이런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도록 신속하게 올해 수능 출제에 변화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 변할지, 명쾌한 기준과 방향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이 커지면 또 다른 사교육을 부추길 수 있다.

이와 함께 2025학년도부터 일반고 전환이 예정됐던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존치시키기로 한 정부의 결정은 또 다른 불평등과 사교육 의존을 낳을 수밖에 없다.

대학 서열화가 가속화되면서 이른 바 ‘인 서울’을 놓고 수험생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현실에서 유치원생부터 사교육에 내몰린다는 점을 정부는 모르고 있는지 의문이다. 공정한 수능을 위해서는 학교 현장이 정상화돼야 하는데 이를 외면하고 당장 수능만 뜯어고치겠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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