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 세상
‘찰나’ 세상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6.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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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용담동 용두암에서 도두봉까지 해안도로는 매력적이다. 늘 관광객들과 산책하는 시민들의 활기로 출렁인다.

하지만 요즘 이 도로를 걷다 보면 인생의 부침(浮沈)을 보는 듯, 마치 ‘흥망성쇠(興亡盛衰) 사슬’을 보는 느낌이다.

오래전에는 출렁다리에서 용머리까지 용두암길이 이른바 ‘핫플레이스’였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놀고 또 바다를 보았다. 그러던 것이 점점 서쪽으로 가더니 이제는 핫플레이스가 도두봉 앞으로 옮겨갔다.

그 서진(西進)의 결과로 내가 마음이 허전한 날에 찾아가 ‘물멍’하던 카페도 언제 휴·폐업을 했는지, 문을 닫고 임대·매매 간판을 달고 있다.

정말 그 변화가 ‘찰나(刹那)’ 같다.

▲해안도로 뿐이랴.

세상은 생각보다 더 빨리 변하고있다. 그 모든 게 찰나다. 더이상 우리가 그동안 정답이라고 했던 직업, 문화, 관습, 가치 등에 대한 인식이 정답이 아닐수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찰나는 산스크리트어 크샤나(ksana)에서 음(音)을 따온 말로 시간의 최소 단위를 나타내는 불교 용어다. 양쪽으로 팽팽히 잡아당겨진 명주실을 칼로 자르는 그 눈 깜짝할 시간을 64찰나의 시간이라고 한다.

인생도 찰나라고 한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인생에 익숙해질 때,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낭만가객 최백호가 7순이 넘어서 “세상에 익숙해지고, 문득 뒤돌아 생각해보면…”하는 ‘찰나’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제 인생에 익숙해졌는 데, ‘찰나’의 시간에 가버린 지난 날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묻어나온다.

▲흥망성쇠의 찰나는 사람만이 아니다.

국가와 지역사회도 흥망성쇠, 변화의 사슬이다. 어느 시기에 나라의 힘이 왕성할 때가 있고 또 쇠망의 시기도 있다. 지역사회나 기업도 마찬가지다.

흥(興)과 망(亡), 성(盛)과 쇠(衰)는 밤과 낮 같아서 밤이 온 다음엔 낮이 오고, 낮이 지나면 밤이 찾아오는 이치다. 그래서 옛 선인들이 흥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며 경계를 하고, 또 망이 나쁜 일이라고 실망하지말고 미래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까닭도 이러한 흥망성쇠의 원리를 역사에서 발견하여 슬기롭게 대비하자는 것이다. 아우렐리우스도 모든 것의 운명은 변한다고 했다. 사실, 산을 오르는 길에서는 못 보았던 꽃을 내려올 때 보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요즘 절기 탓일까.

낮 기온이 후덥지근한 게 양기가 가장 왕성하다는 단오(음력 5월5일, 양력 6월22일)도 열흘 앞이다.

단오(端午)에 주고 받던 부채(端午扇)로 바깥더위는 물론 이 풍진 세상, 가슴 속 열기도 좀 식힐 일이다.

그리고 대부분 비 온 뒤에는 찬란한 무지개가 뜨니까.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허해지면 해안도로에 요즘 떴다는 핫플레이스에 가보자.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색깔 경계석이 해변을 따라 무지개처럼 줄지어 있다.

이 흥망성쇠의 사슬 속에서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둘 게 하나 있다.

분초를 다투는 찰나 세상.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오늘이 가장 느리다. 이런저런 세파, 애련을 모두 잊어버리고 차분하게 해안도로 물멍도 하면서 오늘을 살아내고 그럼으로써 새날, 내일을 생각해내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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