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선작지왓 동쪽 끝 지점, 윗세누운오롬
한라산 선작지왓 동쪽 끝 지점, 윗세누운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6.0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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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윗세누운오롬
맑은 날씨에 윗세오롬 철쭉이 붉게 빛나는 선작지왓.
맑은 날씨에 윗세오롬 철쭉이 붉게 빛나는 선작지왓.

다른 해와 달리 올해 제주의 봄은 무척이나 비가 많았다. 한차례 큰 태풍이 남태평양 괌 일대를 휩쓸고 지나더니 오키나와 남쪽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태풍의 꼬리는 폭우로 쏟아졌다. 그래서인지 선작지왓의 봄은 봄 같지 않다. 2022년 6월 1일은 음력 5월 3일이었는데 2023년 6월 1일은 음력 4월 15일로 올해는 윤이월의 영향으로 차이가 난다.

선작지왓도 어쩔 수 없이 자연의 순리를 벗어나지 못한 듯 날씨와 날짜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양력으로는 이틀 차이나 음력으로는 두 주일 정도의 차이가 나고 비 오는 날이 많아서인지 선작지왓은 선선하고 철쭉도 만개하지 않아서 70% 안 되게 개화한 것 같다. 또한 작년에 말랐던 시냇물이 선작지왓 평원을 흘러서 골짜기는 소리 내며 계곡으로 흐르는 것 같다.

‘선작지왓’이란 한라산 백록담(서벽)에서 보면 앞(선(先))에 작지(돌멩이)가 널려 있는 왓(밭 또는 평지-평원)를 일컫는 데 옛날 제주도 하르방들이 작명을 잘한 것 같다. 어리목에서 선작지왓 마지막 지점 ‘윗세오롬’ 대피소가 있는데 바로 서남쪽에 세 개의 오롬이 연이어 있다. 동쪽 끝에서 보면 윗세붉은오롬-윗세누운오롬-윗세족은오롬 순이다.

윗세오롬의 세 오롬이란 윗세오롬들 중에 맏이 격인 윗세붉은오롬, 둘째 격인 윗세누운오롬, 막내 격인 윗세족은오롬이라 불리는 세 개의 오롬이 있는 데 이 셋 중에 가장 예쁜 모습으로 중간에 누워 있는 오롬이 윗세누운오롬이다. 제주도에서 누운오롬의 형태를 이루는 오롬들이 많은데 ‘누운오롬’이라는 이름을 쓰는 곳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주시 해안동의 눈오롬(와악臥岳), 삼양동의 눈(논)오롬, 한림읍 금악리의 누운(눈)오롬, 애월읍 광령리의 윗세누운오롬, 장전리의 눈(논)오롬, 봉성리의 눈오롬, 구좌읍 종달리의 와악(臥岳·용눈이·龍臥岳), 안덕면 화순리 논오롬 등 여덟 곳이나 된다. 그러므로 눈오롬들을 말할 때는 반듯이 마을 이름 등을 첨가해 부르는 것이 옳다.

제주오롬들의 모습이 여성적인 것은 공통점이다. 제주 오롬들을 아직까지 분류하기는 네가지(원추형-원형-말굽형-복합형)으로 분류하는 데 눈오롬들 중에는 이 모든 형태들 중의 한 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 윗세누운오롬은 원추형 모양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윗세누운오롬의 경우는 두 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는데 좌우의 봉우리의 높이는 외관상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누운오롬 앞에 작은 폭포처름 흐르는 맑은 시냇물.
누운오롬 앞에 작은 폭포처름 흐르는 맑은 시냇물.

윗세누운오롬의 모습은 좌우가 볼록하고 가운데가 잘룩한 모습인데 마치 비바리 가슴 같아서 설레게 한다. 그런데 백록담을 감싸고 있는 서벽을 향하여 올라가는 선작지왓 탐방로를 걷는 중에 계속 누운오롬을 바라보며 가게 되는데 동서쪽의 모습에 변화도 별로 없어 보인다. 윗세누운오롬의 관망이 제일 좋은 곳은 윗세오롬 산장을 200여 m 앞둔 개울가인 것 같다.

올해 유독 많이 내린 비에 윗세오롬 산장(휴게소)을 향해 가는 선작지왓에서 바라보는 누운오롬은 이제껏 본 적 없는 맑은 물이 시내 되어 흐른다. 어리목을 올라오는 동안에 쾅쾅 굉음을 내며 흐르던 계곡의 물소리와 달리 누운오롬 앞에서 바라보는 시냇물은 작고 낮은 폭포를 이루며 정겹게 흐르니 사뭇 서정적이다.

선작지왓으로 오르는 어리목 밀림 속의 탐방객들.
선작지왓으로 오르는 어리목 밀림 속의 탐방객들.

예년과 비교하면 비가 많고 날씨가 다소 추워서인지 선작지왓의 봄 축제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지난해 여러 곳에서 보았던 주홍색 한라병꽃을 본 것은 한 군데뿐이다. 또한 노란색 한라 매발톱꽃이나 하얀색으로 꽃 피우는 한라마가목이나 노린재나무(노란색을 내는 매염제) 꽃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른 봄 들판에서 보이는 노란빛 쪼그만 봄맞이꽃이나 흰그늘용담, 쪼그만 하얀빛 별 같은 벼룩나물꽃들은 지난해 보지 못하던 모습들이다.

조금 다행이다 싶은 것은 구상나무 어린 개체들을 꽤 볼 수 있다. 또한 작년에 눈에 띄지 않던 푸른 잎새 시로미들이 꽤 눈에 띄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공원 당국의 수고가 눈에 보인다. 훼손된 곳을 복원하려고 봉지에 싼 것들도 보이고 탐방로 주위에는 산죽들을 꽤 베었는데 한라산을 점령한 산죽들과의 싸움은 한라산국립공원의 최대 관점으로 보인다.

휫파람새의 지저귐과 여린 시냇물 소리, 백골을 드러낸 고사목과 어린 구상나무, 1000m 아래의 울창한 숲에는 서어나무·개서어나무·당단풍·고로쇠·산딸나무·때죽나무들과 곰솔·구상·노가리·굴거리·꽝꽝나무들이 함께 덮였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온산을 붉게 물들일 것이고 겨울이 되면 상록수들이 빛을 발하는데 지금은 철쭉꽃이 제주도의 마지막 봄을 붙잡는 듯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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