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제주여신의 이름을 인용한 ‘가믄이오롬’
세 번째 제주여신의 이름을 인용한 ‘가믄이오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3.06.0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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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가믄이오롬
구두리 오롬에서 바라본 가문이 오롬
구두리 오롬에서 바라본 가문이 오롬

남조로(1118번 도로) 사려니숲길 정문 북쪽 300 여m에 붉은오롬 자연휴양림이 있다. 그 맞은편에는 세 개의 오롬인 구두리·가믄이·쳇망오롬이 있다(붉은오롬과 구두리오롬은 오롬 이야기 게재됨) 그러나 가믄이오롬은 도저히 개념이 잡히지 않았다. 붉은오롬을 오르거나 구두리오롬을 오를 때면 늘 버릇처럼 가믄이오롬을 올랐었다.

그 까닭은 가믄이오롬의 명칭에 따른 유래나 어원을 도저히 감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불현듯 제주도 전설 책을 읽던 중에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가믄이’는 제주 3대 신(여신) 중 하나인 가문장아기에서 유래한 명칭이란 것을 깨닫게 되면서 드디어 이제 그 유래를 밝혀 보려는 것이다.

남조로 길 건너 표선면 가시리 산 158번지에 붉은오롬이 있고 158-2번지에 세 개의 오롬이 있는데 그 중간에 가믄이오롬, 북쪽에 구두리오롬, 남쪽에 쳇망오롬이 있다. 세 개의 오롬은 그 지경을 분간하기 어렵게 연이어 있다. 산의 높이로 볼 때 구두리는 해발 517m·비고 106m, 가믄이는 해발 496.2m·비고 106m, 쳇망오롬은 해발 446.2m·비고 55m이다.

오롬 면적은 구두리 437㎡, 쳇망 140.916㎡ , 가믄이 116.176㎡로 세 번째다. 옛사람들은 산 높이보다 면적을 중요시했던 것 같다. 토산리 경우도 가세오롬은 해발 200.5m·비고 101m인데 토산오롬은 175.4m·비고 75m로 가세오롬이 높으나 면적은 가세오롬 373.099㎡보다 토산오롬이 398.623㎡로 더 크니 토산오롬이 마을 이름과 같이 쓰였다.

가문이오롬 5월, 때죽나무꽃이 떨어져 별처럼 피었다.
가문이오롬 5월, 때죽나무꽃이 떨어져 별처럼 피었다.

제주 신화의 신들은 모두 여성 신으로 주신(主神)은 설문대할망, 제2 신은 삼승할망, 제3 신은 가믄장아기다. 가믄장아기는 제주 샤머니즘 ‘삼공풀이 설화’에 등장한다. 가믄장아기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지하는 운명의 신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에 당당히 맞서는 여신이다.

먼 옛날 남녀 두 거지가 만나 연을 맺는데 마을 사람들은 성실히 사는 거지 부부를 기특히 여겨 일을 맡겨 준다. 살림이 날로 좋아지며 세 딸을 낳는데 동네 사람들이 이 아이들을 키워준다. 큰딸은 은그릇에 밥 먹여 키워서 ‘은장아기’가 되고 둘째 딸은 놋그릇에 밥 먹여 키워서 ‘놋장아기가 되고 셋째 딸은 나무 바가지에 밥 먹여 키워서 ’가믄장아기라 불렀다.

셋째 딸이 출생 후 거지 부부의 일은 날로 잘 풀려 집도 사고 소도 사고 큰 부자가 된다. 가족들은 곤(쌀)밥에 고깃국 먹고 비단옷 입고 하인을 거느리며 떵떵거리며 살게 되었다. 이들 부부는 배부르고 등 따시니 교만해져서 어느 날 딸들을 차례로 불러서 묻는다.

“은 장악이야! 너는 누구 덕분에 호강하며 사니?” 그러자 그녀는 하느님과 부모님 덕입니다. 둘째 놋장아기도 같은 대답을 한다. 그런데 가믄장아기는 같은 질문에 “하늘님과 부모님 덕분이 크지만, 제 복도 있지요!” 그 말을 들은 부부는 은혜도 모르는 불효자식이라며 가믄장아기를 내쫓아 버린다. 그녀는 검은 암소에 먹을 것, 입을 것을 싣고 집을 떠난다.

두 언니는 동생 가믄장이를 시기하다가 지네가 되고 독버섯이 되고 두 부부의 살림도 기울어 다시 거지가 되어 지내다가 두 눈도 어두워진다. 그러나 가믄장이는 집을 나간 후에 시집도 가고 큰 부자가 되어 소경을 위한 잔치를 베풀어 두 부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두 부모도 딸 가믄장이를 만난 뒤에 다시 눈도 뜨고 행복해진다는 제주에서 전해지는 전설이 있다.

이와 같은 ‘가믄이오롬’은 제주 고대 전설 중에 세 번째 여신인 가믄(장)이를 오롬의 명칭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오롬을 여신의 이름으로 이용한 것과 견주어 보면 여기에서 1㎞ 안에 연이어 있는 여믄영아리, 물영아리는 ‘신령이 거하는 오롬들’이란 뜻인 것을 보아도 가믄이오롬은 깊은 산속에 숨겨진 신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필자는 길이 없는 이 오롬을 네 번이나 탐사하는 중에 한 번도 올라간 곳으로 내려오지 못할 만큼 산이 깊다. 또한 필자는 탐사 중에 눈 녹은 낙엽에 미끄러져 발목이 삐여 119에 실려 나오기도 했다.

남조로에서 이 오롬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기 어렵다. 또한, 세 오롬(구두리-가믄이-쳇망)은 탐방로도 없으니 가이더가 없이는 트래킹 하기가 쉽지 않다. 입구에서 150m쯤 좁은 시멘트 길을 따라가다 표고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들어간다. 아래편에는 삼나무가 식재되었고 위로는 곰솔·산딸·때죽·고로쇠·당단풍·서어나무 등의 낙엽수와 참식·생달·새덕이 등이 상록수, 구지뽕·칡·찔레가시가 헝클어진 속에 가믄이오롬은 오늘도 조용히 숨어 있다.

남조로 상 동쪽에 있는 구두리, 가문이오롬 이부 표지판.
남조로 상 동쪽에 있는 구두리, 가문이오롬 이부 표지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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