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 ‘근본’ 김만덕 정신 선양…양원찬 “이젠 세계로”
제주인 ‘근본’ 김만덕 정신 선양…양원찬 “이젠 세계로”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3.05.3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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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인] 2. 양원찬 김만덕재단 이사장
양원찬 김만덕재단 이사장이 지난 30일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임창덕 기자
양원찬 김만덕재단 이사장이 지난 30일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임창덕 기자

“의인 김만덕의 정신과 철학은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굶는 사람을 살리는 일은 이념과 사회를 초월합니다. 김만덕 정신을 세계화해야 하는 이유죠.”

서울에 정착한 제주 사람들에게 ‘해결사’가 있다. 심지어 ‘서울 길은 양 박사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서울 강남에서 정형외과를 운영하면서 쌓아온 그의 ‘사람 네트워크’는 중앙 부처도 움직일 만큼 막강하다.

그런 그의 힘은 오직 제주 사람, 그리고 고향 사랑을 위할 때 발휘된다. 그리고 지금은 의인 김만덕의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본지는 제주인의 ‘근본’을 ‘명분’으로 삼아 김만덕재단을 이끄는 양원찬 이사장(73)을 만나 의인 김만덕의 세계화에 나선 이유를 들어봤다.

# ‘천섬 쌓기’, 김만덕 전국화 신호탄

양 이사장은 김만덕의 정신을 선양하는데 팔을 걷어붙이게 된 계기로 배우 고두심씨의 간절함을 꼽았다.

양 이사장은 2003년 데뷔 30주년을 맞아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제주도를 한 바퀴 걸었던 고씨의 여정에 힘을 보탰었다.

양 이사장은 “고 배우는 1970년대부터 이미 김만덕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1977년에 김만덕의 일대기를 다룬 MBC 드라마 ‘정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적도 있다”며 “데뷔 30주년을 맞아 제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중 나를 찾아왔다. 그때 그는 ‘왜 남자들은 모른척하냐. 김만덕을 알리는 일에 함께해달라’고 요청했고, 그 말에 곧바로 이 길에 들어섰다”고 회상했다.

실제 양 이사장은 종잣돈으로 2억원을 내놓고 사단법인 김만덕기념사업회를 구성했다. 특히 본인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도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제주 출신 인사들을 임원으로 위촉하는 등 김만덕을 알리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2007년 ㈔김만덕기념사업회가 추진한 ‘김만덕 나눔 쌀 천섬 쌓기’ 프로젝트는 김만덕 정신의 전국화의 신호탄으로 작용했다.

양 이사장은 “당시 도교육감을 만나 ‘김만덕 할머니가 쌀을 구해 어려운 백성, 굶고 있는 백성들을 먹여 살렸다. 우리도 제주 학생들과 함께 김만덕의 나눔 정신을 재연해보자’고 제안해 천섬 쌓기를 추진했다”며 “섬 안팎의 도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쌀을 관덕정에 쌓아놓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얼마나 벅찬 감동이었냐면 그 자리에서 ‘몇 년 안에 서울 올라가서 만섬 쌓기를 하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 김만덕 정신, ‘나눔의 상징’으로

양 이사장은 자신의 선언을 2년 만에 현실화했다.

당시에는 행사나 집회가 열린 적이 없었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김만덕 나눔 쌀 만섬 쌓기’를 두 차례나 실시했다. 결과는 모두 ‘대성공’.

양 이사장은 “서울시 초·중·고생 150만명으로부터 모은 쌀을 어려운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학생 1명 집에 가족 3명이 산다고 가정하면 무려 서울시민 450만명이 참여한 것”이라며 “부모들이 아이가 가져온 봉투에 쌀을 담아주면서 김만덕이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그렇게 김만덕 할머니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김만덕 나눔 쌀 만섬 쌓기는 방송사가 생중계하고, 대통령이 청와대를 통해 관심을 표명할 정도로 이슈가 됐다.

양 이사장은 “대기업들이 고두심씨를 초청해 ‘우리는 무엇을 도와주면 되냐’고 물었을 정도였다”며 “기업들이 쌀 대신 보내준 후원금 총 15억원으로 2012년 베트남에 칸호와제주초등학교와 번푸만덕중학교를 설립했다. 김만덕의 나눔 정신이 해외로 뻗어나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김만덕 나눔 쌀 만섬 쌓기' 당시 모습. 자료사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김만덕 나눔 쌀 만섬 쌓기' 당시 모습. 자료사진

양 이사장과 고두심씨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김만덕 나눔 쌀 만석 쌓기 이후 KBS가 자체 예산으로 45부작 드라마 ‘거상 김만덕’을 제작해 방영했다. 

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제64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200년 전 온갖 역경을 뚫고 제주도 최고의 부자가 되었던 김만덕 할머니는 4년간 최악의 흉년이 들자 전 재산을 내놓아 수만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이에 대해 ‘은혜의 빛으로 세상을 밝혔다’고 그 뜻을 기렸습니다.…(중략) 봉사와 나눔의 문화가 새로운 정신 운동이자 생활 운동으로 뻗어나가길 진심으로 고대합니다”라며 김만덕 정신을 ‘나눔의 상징’으로 선언했다.

양 이사장은 “대통령의 선언 직후 한 가지를 더 결심했다. 김만덕기념관을 짓는 것”이라며 “중앙 부처를 통해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50억원을 받아냈고,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김만덕기념관의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 “제주의 근본 지켜야 미래가 있다”

김만덕의 정신을 전국적으로 알린 양 이사장의 시선은 이제 국제무대를 향하고 있다.

김만덕재단은 31일 제주여성가족연구원과 함께 ‘제18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의 ‘나눔과 평화, 김만덕국제상 제정을 통한 국제적 협력과 연대’ 세션을 개최해 김만덕 정신의 세계화를 피력했다.

양 이사장은 “김만덕 할머니와 같은 철학을 갖고 나눔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전 세계 여성들을 발굴해 시상하는 김만덕국제상 제정이 내 생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라며 “특히 전 세계의 권위 있는 인사들로 가칭 김만덕국제상 제정위원회를 구성해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공모한다면 김만덕 정신의 세계화를 이뤄낼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양 이사장은 “김만덕 정신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일은 제주의 자존심을 키우고, 제주인의 따뜻한 마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양 이사장은 “우리가 배워야 할 김만덕 정신은 항상 겸손하고, 남을 위해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빈부격차가 심화하고,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물질만능주의 등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김만덕 정신을 통해 해소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제주의 청년들이 제주의 유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어떤 일이든 ‘근본’이 가장 중요하다. 제주인으로서 김만덕의 정신 등 제주의 근본을 지키면서 미래 제주를 개척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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